사진 출처 : https://uandromeda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fiQWZOGhV-U
함민복, 서울역 그 식당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김남조, 성냥
성냥갑 속에서
너무 오래 불붙기를 기다리다
늙어버린 성냥개비들
유황 바른 머리를
화약지에 확 그어
일순간의 맞불 한 번
그 환희로
화형도 겁없이 환하게 환하게
몸 사루고 싶었음을
장대송, 고향
그곳을 찾으면 어머니가 친정에 간 것 같다
갯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나서
겨울 햇살에 검은 비늘을 털어내는
갈대가 아름다운 곳
갈대들이 조금에 뜬 달 아래서
외가에 간 어머니가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던 곳
둑을 넘어 농로에 흘러든 물에 고구마를 씻는 아낙의 손, 만지고 싶다
이선영, 세수
어제의 나를 깨끗이 씻어낸다
오늘의 얼굴에 묻은 어제의 눈곱
어제의 잠
어젯밤 어둠 어젯밤 이부자리 속의
어지러웠던 꿈 어제가 혈기를 거둬간
얼굴의 창백함을
힘있지는 않지만 느리지는 않은
내 손길로 문질러버린다
늘 같아 보이지만 늘 새것인 물
얼굴에 흠뻑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늘엔 오늘 아침 갓 씻어낸 물방울 숭숭 맺힌 나의 얼굴이 있고
그러나 왠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지 않은가
어제는 잔주름만 남겨놓았고
오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이윤학, 진흙탕에 찍힌 바퀴 자국
진흙탕에 덤프트럭 바퀴 자국 선명하다
가라앉은 진흙탕 물을 헝클어뜨린
바퀴 자국 선명하다
바퀴 자국 위에 바퀴 자국
어디로든 가기 위해
남이 남긴 흔적을 지워야 한다
다시 흔적을 남겨야 한다
물컹한 진흙탕을 짓이기고 지나간
바퀴 자국, 진흙탕을 보는 사람 뇌리에
바퀴 자국이 새겨진다
하늘도 구름도 산 그림자도
바퀴 자국을 갖는다
진흙탕 물이 빠져 더욱
선명한 바퀴 자국
끈적거리는 진흙탕 바퀴 자국
어디론가 가고 있는 바퀴 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