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일본 홋카이도 아칸 호수에는 특이한 생명체가 산다. 김이나 파래처럼 보이는 희귀 녹조류가 동그란 공 모양으로 뭉쳐서 자란다. 불리는 이름은 ‘마리모’이다. 그곳 전시관에는 다양한 크기의 마리모들이 물속에서 신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작은 방울 같은 것들은 관광기념품으로 유리병에 담아서 판다. 그 마리모 두 알이 담긴 병을 집에 입양했다. 야구공만큼 크려면 200년쯤 걸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좋았다.
2년 쯤 지났을까. 둘 가운데 한 놈이 자꾸 위로 둥실 떠올랐다. 물속에 사는 녀석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좋은 신호일 리 없다. 물을 갈아줄 때마다 꺼내 쓰다듬어주면 가라앉곤 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다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퍼뜩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쳐갔다. ‘이놈들이 그동안 꽤 자랐는데 혹시…’ 하고 살펴보니 병의 바닥 쪽 면적이 더 이상 두 녀석을 동시에 받아줄 수 없을 만큼 좁아져 있었다. 커진 덩치로 서로 닿아 있을 수밖에 없게 되자 그중 한 녀석, 아마도 약한 쪽이 위로 떠올랐던 모양이다. 유리병 하나를 더 마련해서 각기 딴살림을 차려주자 문제의 그 녀석도 하룻밤 사이에 차분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공존이라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식물 세계에서 빽빽한 숲의 나무들이 어떻게 더불어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은 꽤 유명하다. 숲 속에서 하늘을 향해 찍은 사진에서 서로 이웃한 나무들은 절묘하게 간격을 벌려 최대한 생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종잇장만 한 틈이라도 만들어 닿거나 겹쳐지는 일은 없다.
인간세계에서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이런 겹침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21세기 초 동아시아 국제사회는 겹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겹쳐지면서 상호 공존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부추기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동해와 남중국해에서,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초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전쟁 시대에 달갑지 않은 겹침이 일어나 끊임없이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인기몰이 중인 한국 남녀 톱스타 김수현과 전지현이 생수 광고 하나로 순식간에 스캔들에 휘말리는 일이 벌어졌다. 앞뒤 사정을 들어보니 적이 난감했다. 그 제품의 원산지가 ‘창바이산(長白山)’으로 광고되고 있다는 것인데, 백두산의 절반 이상은 중국의 영토이고 그쪽의 호칭이 ‘장백산’이라는 것은 엄연한 현실 아니던가. 우리가 중국에서 ‘장백산’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기분이 나빠야만 한민족으로서 정상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 갈등으로 말하자면 20세기 일본의 원죄가 워낙 명확하므로 상황이 간단하게 이해되는 점이 있다. 하지만 ‘아베와 고노담화’ 등 국가권력 차원의 일들은 접어두더라도, 최근 동아시아 3국의 시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민족주의-국수주의의 과잉 현상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누군가는 서울의 종군위안부상에 ‘말뚝 테러’를 저질렀고, 도쿄에서는 잊을 만하면 ‘혐한(嫌韓)’ 시위가 벌어진다. 몇 년 전 일이지만 베이징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시위가 세계 각국에서 조직되었을 때 사태는 완전히 뒤집어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휘두르는 흥분한 중국 청년들이 서울 한복판을 누볐다.
중국 생수 얘길 했지만 우리 쪽의 과잉도 못지않은 수준이다. 2011년 축구 한·일전에서 골을 넣은 우리 선수가 세리머니를 한다며 ‘원숭이 흉내’를 내 보였는데,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어이없는 제스처였달까.
유럽 쪽은 자기네 사이에 어마어마한 대학살을 겪고 나서 이젠 더불어 사는 방법을 웬만큼 터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쪽 동아시아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일본 지식인 가운데 누군가는 독도에 대해 “그깟 섬 따위 한국에 줘 버리자”고 했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정치적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국수주의자여야만 될 것 같은 이즈음, 세 나라 모두에서 이런 세련되고 멋진 정신이 자라나기를 오히려 기대하고 싶다.
국가주의의 폐해는 20세기의 인류가 이미 뼈저리게 경험한 바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구렁텅이를 향해 쇄도하는 들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정신이 번창해 국가주의의 과잉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