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를 지키자
당시 <동아일보>는 민주회복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언론자유수호투쟁을 선도한데 이어 보도 금지된 시위ㆍ집회ㆍ기도회 현장을 보도하고, 개헌문제에 대한 사설을 취급하자, 정부(중앙정보부)는 각 기업체 및 기관에 압력을 행사하여 무더기 광고해약사태를 빚는 탄압을 자행했다.
정부의 광고탄압이 계속되자 기자협회는 △ 정부의 언론탄압중지 △ 구독운동전개 △ 광고해약회사 상품 불매 △ 동아일보 철회광고를 게재한 신문 불매운동 등의 행동강령을 제시함으로써 범시민적 저항운동을 유도했고, 이에 호응하여 각 민주단체와 일반 시민의 격려광고가 쇄도하였다.
격려광고에 물꼬를 튼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은 <동아일보> 1975년 1월 1일자 8면 광고란에 "언론의 자유를 지키자"는 제목과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한 시민’명의로 격려광고를 실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시민들의 격려광고가 봇물처럼 답지하고, 내용중에는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글이 많았다. “동아, 너 마져 무너지면 나 이민 갈거야!”라는 광고문안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1975년 당시, <동아일보> 광고국장이었던 김인호(84)씨는 3.17 동아사태 31주년을 앞두고 11일 <미디어 오늘> 기자와 만나 “74년 12월 30일자 1면에 내 명의로 격려광고 모집 공고를 낸 뒤 과연 광고가 들어올까 생각하고 있는데 31일 오전 10시께 한 사람이 ‘김대중 선생의 심부름’이라며 친필 광고 문안과 광고료를 갖고 와 내가 직접 이를 접수, 75년 1월 1일자 신년호에 게재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국장은 “당시 이 광고를 누가 냈는지 알려지면 청와대에서 난리가 나고 광고 게재자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한 시민’이 누군지 알리지 않았다”며 “그날 광고를 가져온 사람은 나중에 알고 보니 김옥두 비서였다”고 회고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당시 격려광고에서 “언론의 자유는 우리의 생명이다. 그것 없이는 인권도 사회정의도 학원과 종교의 자유도 그리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국가안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는 언론자유와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한 시민으로서 모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언론자유의 촛불을 지키기 위하여 이 광고문을 유료 게재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당시 김 전대통령 총무비서였던 김옥두 전 국회의원은 13일 “75년 1월 1일자 ‘한 시민’ 광고는 내가 갖고 간 게 맞다”며 “당시 김 전대통령은(74년 납치사건 이후) 가택 연금 상태였는데, 동아 사태를 보고 ‘나도 어렵지만 동아일보를 살려야 한다”면서 직접 격려광고를 내고 주변에도 적극 권려했다. 신년호 이후에도 몇 차례 광고를 더 냈다.”고 말했다. 왜 ’한 시민‘ 명의로 광고를 냈느냐는 질문에 김 전 의원은 “김 전대통령이 격려 광고를 낸 것을 알면 동아일보에 대한 탄압이 더 가혹해 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석 7)
<동아일보>는 이후 김대중을 비롯한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격려에도 불구하고 끝내 박 정권에 굴복하여 자유언론투쟁에 앞장선 언론인 다수를 쫓아내고 말았다.
주석
7) <미디어 오늘>, 2006년 3월 15일 (제5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