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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게시물ID : lovestory_834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6
조회수 : 4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22 18:03:29
사진 출처 : http://black-is-a-poetic-color.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f9s71tsXJYA




1.png

손현숙밤바다

 

 

 

바다는 덩어리째 익어간다

어둠에 기대어 단단해진 물결

바다를 끌고 가는 길이 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너울이 보인다

물빛으로 제 몸의 뿌리 키워내는 바다

맨발로 저 캄캄해진 물위를 지나

네 곁에 기도처럼 눕고 싶기도 했다

 

마음이 수평선 밖으로 끌려 나간다

막배 고동소리가 오래 묵은 환청 같다

손가락으로 천천히 뱃길을 따라 가다

맨살에 비밀을 입은 바다

 

깨지지 않는 적막

너에게서 온 것들 너에게로 돌아가는 때

저 혼자 일어섰다 사라지는

소실점 밖 현실이다







2.jpg

이가림세상의 모든 조약돌들은

 

 

 

지금

세상의 모든 조약돌들은

저마다 하나만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정다운 손으로 만져질 수 있기를

아니

더 이상 숨쉴 수조차 없이

온통 감싸여 달아오르는

한 개 기쁨이 되기를

 

하지만 세상의 모든 조약돌들은

저마다 저마다의 슬픔에 파닥거리며

조금씩 닮아져간다

나의 얼굴이 아닌 얼굴

너의 얼굴이 아닌 얼굴로

서로 기대어

잠시 낯선 체온을 나누어 갖는

서글픈 봉별(逢別)의 순간들

그 틈새에 모래가 되어

흩어진다

 

지금 세상의 모든 조약돌들은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무서운 망각의 저쪽

어둠으로 사라지기 전

저마다 제 이름이 조약돌이라고

누군가

단 한번 그렇게 나직이

불러주기를







3.jpg

박유라가을이 주머니에서

 

 

 

찰칵낙엽을 꺼낸다

아직 핏기 마르지 않은 부고 한 장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려 고양이라고 읽으며

1280×960 파인더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순식간에 지나가는 한 컷

고양이가 껍질 벗긴 장어 한 마리를 훔쳐 물고 달아난다

명산장어에서 한 칸 공터를 지나 오동도횟집까지

햇살을 파닥이며 바람이 재빨리 불고 간다

피복 벗겨진 고압선처럼

몸에서 꺼낸 한 줄기그림자가 시뻘겋게 감전되는

오후 1시 30분 저기 한 칸 빈 주머니에

--직 섬광이 지나갔던 걸까

고요 속에 파들거리고 있는 그녀를 관통하여

찰칵낙엽이 진다







4.jpg

정호승여수역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계속 달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린다







5.jpg

박주택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여행자처럼 돌아 온다

저 여린 가슴

세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의 휘황한

고적을 깨달은 뒤

시간의 기둥 뒤를 돌아 조용히 돌아 온다

 

어떤 결심으로 꼼지락거리는 그를 바라다 본다

숫기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간지럽히는 흙을

바라다 보고 있다

 

물에 젖은 돌에서는 모래가 부풀어 빛나고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들만 비에 젖는다

 

기억의 끝을 이파리가 흔들어 놓은 듯

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들고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 온다

 

저 오랜 투병의 가슴

집으로 돌아 온다

지친 넋을 떼어 바다에 보탠 뒤

곤한 안경을 깨워

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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