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natureandbeauty.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lxA7lcNgtL8
이성복, 차라리 댓잎이라면
형은 바다에
눈 오는 거 본 적 있수?
그거 차마 못 봐요, 미쳐요
저리 넓은 바다에
빗방울 하나 앉을 데 없다니
차라리 댓잎이라면 떠돌기라도 하지
형, 백년 뒤 미친 척하고
한번 와볼까요
백년 전 형은 또 어디 있었수?
백년 전 바다에
백년 뒤 비가 오고 있었다
젖은 그의 눈에 내리다마는 나는 빗줄기였다
신해욱, 한 사람
모르는 사이 나는 무언가에
이마를 부딪혔다
넘어지지야 않았고
휘파람도 불었지만
이건 어쩐지 바닥에 누운 자세
내 목은 약간 빳빳하고
아직은 이마 위를 지나가는
차가운 구름을 느낀다
어쩌면 이마에 흘러내린
한 올의 차가운 곱슬머릴지도
구름이 구름에 섞이고
얼마쯤 나는 바닥으로 쏟아진다
물론 누운 적은 없지만
이건 어쩐지
너무 낮고도 고른 자세
눈을 뜨면
약간 기울어진 하늘이 보이고
절반쯤만 나는 일어난다
무엇인가 어깨를 치고 간다
그림자는 나보다 조금씩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노향림,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고
부신 햇빛 아래 소리없이 핀
작디 작은 풀꽃들
녹두알만 한 제 생명들을 불꽃처럼 꿰어 달고
하늘에 빗금 그으며 당당히 서서 흔들리네요
여린 내면이 있다고 차고 맑은 슬픔이 있다고
마음에 환청처럼 들려주어요
날이 흐리고 눈비 내리면 졸졸졸
그 푸른 심줄 터져 흐르는 소리
꽃잎들이 그만 우수수 떨어져요
눈물같이 연기같이
사람들처럼 땅에 떨어져 누워요
꽃 진 자리엔 벌써 시간이 와서
애벌레처럼 와글거려요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무슨 경계를 넘어가나요
무슨 이름으로 묻히나요
이정록, 붉은 풍금새
누나하고 부르면
내 가슴속에
붉은 풍금새 한 마리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풍금 뚜껑을 열자
건반이 하나도 없다
칠흙의 나무궤짝에
나물 뜯던 부엌칼과
생솔 아궁이와 동화전자주식회사
야근부에 찍던 목도장
그 붉은 눈알이 떠 있다
언 걸레를 비틀던
곱은 손가락이
무너진 건반으로 쌓여있다
누나하고 부르면
내 가슴속, 사방공사를 마친 겨울산에서
붉은 새 한 마리
풍금을 이고 내려온다
조용미, 매월당
신어(神魚)는 아홉 번 변해 천 리를 날았고
큰 새는 3년 쉬었다 한 번 크게 날려 했다는데
아홉 번 몸이 변하는 고통을
물고기는 어떻게 견뎌내었나
땅보다 낮은 물 아래 사는 것들도
비상의 꿈으로 몸을 트는데
사람의 뜻은 어디까지
치솟을 수 있는 것일까
제 비늘을 떼어내 날개를 달려 했던 물고기
김시습은
몇 번이나 몸을 바꾸었던 것인가
그의 몸에서 나온 사리는 그가
몸을 바꾸었던 흔적
훨훨 천리를 날고 싶었던 물고기의
몸을 바꾸고 또 바꾸어 그 가벼움의 끝에
돋아난 날개는
날개는
무량사 가요
성주산 어귀 골짜기마다 깊숙히 꽃을 감추고 있는 화장(花藏)골 지나 꽃고개 넘어
몸 안에 사리를 감추고 살았던 매월당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