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샀다. 그 언젠가 같이 봤던 침대같았다. 막상 배송을 받고 보니 무늬들의 패턴만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의 오랜 바닥생활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익숙했던 바닥에서 침대로 옮겨와 불편한 마음으로 푹 잤다. 내겐 그냥 내 주변의 변화가 불편한 것인가보다. 침대 귀퉁이 마다 방향제를 뿌렸더니 조금 기분 전환이 되어 퇴근 후면 침대위에서만 쉬게 되었다. 새침대 위에서 그동안 보았던 인상깊던 영화를 다시보며 그동안 입었던 옷을 입고 그동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음이 필요했다. 침대만 달라졌지 모든건 이전과 같았다.
침대를 들여놓으며 중학교 시절부터 쓰던 책장을 버리고 고등학교때 어디선가 구해온 작은 서랍장을 버렸다. 그 서랍엔 지난 시절 악세서리를 만들어 보겠다고 설치던 내가 있었고 책장엔 문학소년의 꿈이 있었다. 함께온 시간들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침대가 들어오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3천원짜리 표딱지가 붙어 밖에 버려졌다. 그렇게 오랜 것들도 버려지는데 왜 지금의 모든 것들은 버려지지 않는가.
지금 이렇게 끌어안고 있는 것들은 내 버려진 그것들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었다. 그냥 기억속 작은 파편에 불과했다. 서랍장에 비해, 책장에 비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이끌어온 시간들에 비해 너무도 작고 초라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속에 네가 있다는게 문제였다.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손을 잡았으며 서로를 바라보았으며 이건 어디서 산 티셔츠인지, 왜 샀는지, 어떤 게 맘에 들어 사게되었는지. 그것들 전부 네가 있었다. 너와 나 지난날의 모든 것들을 퇴고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한가지 나은점은 너를 떠나 보내고 직장을 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직장안 공간속에는 너가 하나도 없다는 점. 당연한 것이지만 헤어진 후라 연락도 하지않았고 사진정리도 미리했으며 너를 느낄 수 있다는게 없다는 점. 한가지, 그 나은점중에서도 10분의 1정도로 작지만 단 한가지. 마트에서 일하기 때문에 네가 뭘 좋아했고 네가 뭘 싫어했는지 알고 있는 점. 그점이 사실 10분의 1정도로 작지 않다는 점.
일이 많아지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에 있는 시간도 줄 것이며 너를 느끼기 충분하기 전에 잠에 들 수 있다는 점. 너의 연락을 기다린다거나 답장을 하기위해 열과 성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무슨 약속이라도 생긴다면 아무런 생각없이 응, 아니 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 언제는 널 만나야되니까 안되 라는게 없다는 점. 작지만 지금의 내게 좋게 생각되는 점점점들이 모여 물결쳐 그 물결을 타고 침대라는 공간으로 인도하여 무심코 잠에 든다는 점.
오늘은 날씨가 좋네, 날씨가 흐리네 감상할 겨를도 없이 출근하여 시간이 어찌 갔는지도 모르게 점심이 되고 갑자기 해가 뉘엿하게 기운다. 나도 뉘엿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여 집에와 씻고 밥을 먹고 침대에서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다시 점점점들을 찾아 잇고 물결을 타고 잠에 들고, 무심한 반복이었다. 그중에서 나은점은 그동안의 휴일처럼 쉬며 충전하는 것이 아닌 또다른 에너지를 방출하며 지낸다는 것. 친구들과의 노래방, 피씨방, 진짜 맛있는 음식점. 일하는 것도 너무나도 바뻤지만 쉬는 날에도 너무나도 나는 바뻤고 일하는 날처럼 보람차게 지내고 있었다.
마치 무심코 생겨버린 엄청난 공백을 메우고자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