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인문학은 탐구보다는 사상 정립을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학도 과학철학 및 과학사의 여러 분파가 있지만, 그것은 과학의 "해석"에 관한 것이지 학문 그 자체는 관찰에 의해 토대가 세워졌지요.
하지만 인문학은 결국 주관적인 잣대가 토대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빼고는 모두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현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팩트"로 못 박아넣고 시작해야지요.
예를 들자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마르크스의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앗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역사를 따라 새로운 현상이 등장하여 학문의 핵심이 부정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들이 계속 새로운 단어, 논리를 만들어내어 순환논리와 궤변을 하였다면 학문은 쇠퇴하고 종교와도 같이 교리처럼 똑같은 것만 달달외우고 사는 사람들처럼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할 때 제 자신을 부정하고서도 새로운, 역지사지의 해석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시각에서만 고군분투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시각에서 보려고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본격적으로 돈의 힘이 아닌 권력와 사회를 좀 더 예의주시하기 시작했고, 공산/사회주의는 세계를 너무 비좁게 바라본 것을 인정하고 바뀌었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역사와 사회에 의해 평가되었으며,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들 또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거나 변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평가를 받고, 여러 경험치를 쌓고 개편을 하여 현재의 여러 간학문적 학문이 보편화된 세계에서 그 명맥이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다른 이들의 시각에서 보는 것을 혐오합니다. 평가를 거부합니다.
자신들의 본래의 명제를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 현상을 자신들의 잣대로 해석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의 시각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명목마저 부정당할 것이라는 공포에서 살기 때문이지요.
특히 현대사회에서 여성주의가 계속해서 퀴어들과 인종주의에 기웃기웃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명목을 확장하기 위함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공산주의가 계속 부정당하면 간학문적 탐구를 통해 바뀐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간학문적 탐구가 아닌 간학문적 "연대"를 하는 겁니다.
실제로도 퀴어들이 주창하는 퀴어, 젠더 관련 학문, 소수인종들의 학문과 페미니즘은 배워보면 논리가 서로 수평선에서 걷고 있습니다.
퀴어는 이성애자(시스젠더)들이 자신들을 제일 차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소수인종들은 백인들이 자신들을 제일 차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페미니즘은 남성이 여성을 제일 차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 여러 잣대들이 서로 부딪히다보니, 안 그래도 컸던 분파 간의 혼란이 커졌습니다. 서로 다른 잣대들이 부딪히며 서로를 이중잣대라고 욕하거나, 스스로 이중적인 인간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페미니스트들이 퀴어들을 오히려 차별(MTF 트랜스젠더 혐오)한다는 사실, 퀴어들이 시스젠더(여성포함)을 차별한다는 사실, 백인 페미와 소수 인종 페미 관련 불화 등등 여러 사건들이 끊이지가 않죠.
이러다보니 처음 페미를 배운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동성애를 강요하는 웃픈 상황이 발생하거나, 모든 시스젠더를 죽여야한다느니, 모든 백인, 모든 경찰을 죽이자느니 하는 인류절멸의 사태를 야기하고자 하는 일도 많이 일어납니다.
왜 이리 충돌하느냐하면, 페미니스트의 이미지가 과격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자는 부엌에나 들어가라고 부르짖는 마초남성 앞의 차분한 오피스룩의 여성이 설교를 하는 장면이 그들의 이미지였다면, 요즘은 반대로 잘 사귀고 있는 이성애 커플 앞에서 시스젠더 죽어라!! 하고 외치는 것이 그들의 이미지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 또한 투쟁의 일부가 되어야한다고 세뇌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렇다보니 분명 내 옆에 있는 건 게이이지만 남성이다 빼애액! 내 옆에 있는 건 여성이지만 이성애자다 빼애액!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부터 과격했습니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투쟁하는 학문은 뿌리부터 과격합니다. 그래도 경마장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것까지는 투쟁을 선호하는 여러 학문 및 종교의 분신자살과 비슷한 맥락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발레리 솔라나스의 앤디 워홀 저격(이유는 남자라서)부터 조금씩 그들의 정신병적인 면모가 부각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그들은 오랬동안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만 그 과격성을 풀고, 사회에서는 얌전한 정치학문가로서 위장했습니다.
그렇게나 잘 숨겨왔던 정신병이지만, SNS가 등장하고나서는 곧 그들의 실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SNS상에서 평소처럼 차분하게 설교하는 모습이 아닌 과격한 모습을 그대로 풀어내기 시작하니, 그들의 본체를 모두 알게 된 것이죠. 윌 스미스가 명언이 생각나네요 "어릴 때, SNS가 없었을 때는 아무도 내가 병신인 걸 몰라서 병신인 걸 비밀로 할 수 있었지요".
결국 SNS가 사회에 반페미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트위터가 뇌를 파먹는 새라는 것이 억울한 게 사실 트위터는 그냥 있는 그대로 그들의 인간성을 내보여준 겁니다. 그리고 그 과격성을 들키자, 페미니스트들은 이제 퀴어, 소수인종등의 약자들과의 연계를 슬슬 풀어내고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워마드의 경우는 그동안 메갈이 그렇게나 집착한 퀴어와의 연계를 단호히 끊었습니다. 심지어 가면조차 집어던져 일베같은 꼴마초와 비슷한 처지로 내려앉았습니다.
경제학이나 역사학같은 평가 위주의 학문과는 다르게 서로 평가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은 순환논리로 이어져온 이 차별 관련 학문들의 충돌을 더욱 키우게 되었고 이 충돌이 대중에게 혐오와 염증을 일으켜 현재 트럼프가 당선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요. 페미니즘과 퀴어학, 소수인종들의 연대가 만든 "정치적 올바름 문화"가 그 역사적인 첫 평가와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현재 세계경찰국가이자 부정하기 힘든 세계 중심인 미국에서 투표로서 첫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페미니즘이 이미 그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뻑하면 "맨스플레인"이라고 하여 다른 이들의 의견을 차단하고, 다른 의견들이 연대한다면 그것 자체가 불쾌하여 "명예남성"이라느니 "페미니즘 공부를 덜했다느니" 낙인 찍어 마녀사냥하는 것입니다. 슬슬 사회적 분위기가 엠마 왓슨이 말했듯이 "페미니즘을 한다하면 남성혐오자라고 비쳐지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영국에서는 이미 90프로 넘는 사람이 양성평등을 지지하지만, 7프로만이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일컫습니다. 이제 페미니스트들이 대중의 지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변화의 상징성도 잃어버렸습니다. 힐러리는 그렇게나 페미니즘을 부르짖었지만 기업을 위시한 수구세력으로 비춰졌고, 트럼프가 오히려 ㅈ되는 말든 변화로서 비쳐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겁니다.
해시태크#모든 남자를 죽여라
이 지랄을 해대고 대선주자가 그 세력을 품에 안으니 눈꼴시리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의 몰락이 트위터로부터 이어졌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페미조롱짤이 트위터발, 혹은 페이스북 발입니다.
모두 에번 윌리엄스(트이타 개발)와 마크주커버그(페북)가 쏘아올린 작은 새에 감사를 표합시다 ㅎㅎ
(흔한 8세 여아 살인범이 트인낭을 실천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