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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 에 있었던 일본 페미니스트 츠다 세츠코
게시물ID : military_832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겔러거형제
추천 : 2
조회수 : 6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14 17: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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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다 세츠코 그녀는 일본 최초의 가사 교과서를 저술한 교사의 딸로 태어나 도쿄에서 대학, 그것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현재 오차노미즈여대. 우리나라의 이화여대와 비슷한 지위를 가졌다.)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부임 할 남편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다

세츠코는 일본에 거주 할 때만 해도 '신여성'의 상징이었던 양복을 입고 다닌 여성이다.

 당대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잘 없었다. 한마디로 굉장히 자유주의적이고 서구지향적인 사고관을 가졌다 할 수 있겠다.하지만 남편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오면서 사람이 확 바뀌는데, '일본 여성'으로서 '식민지 조선 여성'의 '언니'가 되어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선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덴노 아래 황국 신민으로서 가정에 충실한 여성이 되고, 조선인 여성들을 지도하여 신민의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40년대 조선 거주 일본 여성에 대한 담론에서 ‘제국의 딸’이라는 개념이 갖는 중요성을 먼저 살펴보자. ‘제국의 딸’이 된다는 것은 일본인 여자 아이가 제국의 ‘이상적인’ 어머니 ― 제 국을 위한 미래의 병사들을 출산하고, 국가적 영역이 된 가정을 관리하는 ― 가 되기 위해 실용적인 기술을 획득하고 이상적인 도덕적 성품을 함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식민지에서 ‘제국의 딸’에게 발생할 지도 모르는 훼손에 대한 불안감 은 여성과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광고, 공공 강연, 신문과 잡지의 기사 등 을 통해 지속적으로 출현했고, 명령이나 훈계, 또는 지시 등의 형태로 각종 인 쇄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일본의 조선 지배가 장기적 국면으로 접어든 1940년대에, 조선에서 태어나는 일본 아이들의 수는 크게 늘어났고, 이 는 식민 당국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 여자 아 이들에 대해서는 제국의 어머니로서의 잠재적 능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황민화 운동 시기에 여성의 ‘건강’은 국가에 대한 의무로까지 간주 되었다.

 ‘어머니’가 될 여성은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건강한 여자여야 했고, 이 점은 결혼 전 건강진단서 교환을 장려했던 관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제국이 요구하는 ‘어머니’ 상에 대한 담론은 1920년대의 ‘현모양처’에서 1940년대 ‘건강 한 어머니’(健母)로 변화되었다.

 ‘건모’는 건강한 아이를 생산하여 제국의 군사 력과 노동력을 증대시켜야 하는 의무를 짊어졌고, ‘국가화된’(nationalized) 영 역인 가정에서 ‘일본 정신’(大和魂)으로 무장된 미래의 병사와 출산 능력을 갖 춘 미래의 부인들을 양육해야 했다.

 황민화 운동 시기에 가정이 국유화되는 과 정은 1937년 녹기 1월호에 실린 츠다 세츠코(津田節子)의 글에서 잘 드러 난다. “일본과 함께 자라는 가정”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츠다는 가정이 국가 의 운명에 부속된 단위임을 선언했다. 그녀는 고조된 문체로 “[가정이여] 성장 하라, 성장하라, 하늘 높이만큼 성장하라.”(のびよ、のびよ、 空までもの びよ。)라고 하여, [가정이] 국가가 성장하는 만큼 끝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주 장했다. 또한 “국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정이란 국가의 이상을 수용하고, 건국 이념을 내면화 하는 가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정의 일원들이 국체 제국의 딸로서 죽는다는 것
와 같은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가정을 통해 개인과 국가 가 이념적으로 일체를 이루어야 하며, 그 중심에서 여성이 ‘어머니’와 ‘아내’라 는 이름으로 감시자이자 지도자, 그리고 행위자이자 보조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36년 9월의 녹기 특별호는 여성 문제에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자란 2세대 일본 여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조선 출생 내지인( 地人) 딸들에 대한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특별칼럼의 서두에서 편집자는, 조선에서 자란 일본 여성들을 식민지의 말괄량이(フラッ パ)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들이 결혼 배우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 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일본인 정착민 공동체의 몇몇 저명한 인사들 역시 이 특집의 기고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젊은 일본인 여성에 대한 우려에 동참했 다. 조선신문사의 부사장 이시모리 히사야(石森久彌)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 남성들이 ‘조선 출신’(鮮産)보다는 그들의 고향에서 온 여성들 ― 소위 본토출 신(內地産)으로 호칭되는 ― 과 결혼하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 면서 그는, 남성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이런 낡은 사고를 떨쳐버릴 것을 주문했다
출처 경계의 여성들: 한국 근대 여성사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제11장 조선은 그녀들에게 무엇이었나: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 여성들
http://igender.snu.ac.kr/bbs/view.php?id=public_01&no=14

http://www.asiaticresearch.org/cmm/fms/FileDown.do?atchFileId=00000000000000043380&fileSn=43384&is=Y


제국의 딸로서 죽는다는 것*
헬렌 리(Helen J.S. Lee)
플로리다대 아프리카 & 아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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