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의 글이므로 반말인 점 양해 바랍니다.
우선, 진부하게 시작해보자면, 아마도 오유를 처음 들락거리기 시작한것은 2005년경으로 기억한다. 어디서 어떻게 알게된건지는
이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햇수를 따지자면 꽤 오랜기간이었고, 이십대 중반의 파릇하던 사내놈은 이제 삼십대
중반의 텁텁한 아저씨가 되었다. 새로 유행하는 유머나 사진 따위를 보는것이 좋아서, 그리고 다른곳에 비해 눈살 찌푸릴만한 글이
적어서 오유만 주구장창 들락거렸다. 일반 게시판은 잘 보지 않는다. 요즘은 디아블로를 하니까 디아 게시판은 좀 보는 편이다.
그 이외에는 베스트와 베오베만 본다. 추천이나 반대는 하지 않는다. 예전에 로그인 하지 않아도 가능하던 시절에는 가끔씩 하기도 했다.
글도 거의 쓰지 않고, 가입하지 않으면 글이 안써지게 된 후에야 겨우 아이디를 만들었을 정도로 난 게으른 유저다. 요즘은 고양이
사진 보는것이 재일 좋다.
오유에는 사람이 참 많다. 처음 왔던 시절에도 사람이 참 많았지만 지금은 더 많다. 그래서 트레픽도 어마어마 할거같다.
트레픽이 많으면 관리비가 많이 나간다. 트레픽이 곧 돈이다. 관리비를 감당 못해 고생하던 운영자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후원 계좌를
까라고 성화를 냈다. 운영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얼마후에 조그만한 배너 광고 하나를 달았다. 운영자는 유저들에게 사과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IT밥을 10년을 먹은 몸이다 보니, 웹이나 서버 엔지니어가 아님에도 이정도 사이트를 관리하는것이 어느정도의
일일지는 대충 상상 할 수 있다. 또한, 이정도의 페이지뷰와 유저를 가진 사이트를 잘만 활용하면 얼마나 큰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대충
상상 할 수 있다. 광고를 덕지 덕지 바르면 사람들이 떠날거라고 쉽게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광고만이 돈을 버는 방법은 아니다.
유저들의 거부감을 크게 일으키지 않고서도 돈을 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검증되고 좋은, 착한 상품 소개하고 같이 공유하는 좋은 취지라며
공동구매 같은것만 진행해도, 꽤 큰돈이 된다고 알고있다. 억소리 난다던데... 트레픽이 곧 돈이다. 하지만 운영자는 이것을 돈으로 환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굳이 가입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글을 읽을 수 있고, 추천을 하거나 반대를 하거나 댓글을 달거나, 심지어는 게시글을 쓰는것 까지도
가능한것이 참 좋았다. 가입을 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게 되었고, 그 후에는 댓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추천과 반대까지도 로그인을 해야만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사람이 많아졌고, 사람이 많아진 만큼 병신의 숫자도 많아졌고, 사람들의 호의만으로는 시스템이 유지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유저들은 납득했다. 때로는 유저들이 먼저 요구하기도 했다. 일베라는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는 사이트가 생겨났고, 오유는 공격받았으며,
사람들은 피곤해졌다. 일정정도의 본인의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에 평화가 오기를 바랐다. 시스템은 더 강화되었다.
운영자가 시스템을 제시하고 유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유저들의 불편이 극에 달하는 상황이 오면,
운영자는 아주 보수적으로 시스템에 조금의 제한을 거는 정도였다. 나는 이런 운영자의 운영 철학이 좋았다.
오유의 유저들은 착하지도 않고, 선비들도 아니다. 세상 어느곳에라도 사람이 일정 이상 모이게 되면, 그것을 두세가지 기준으로 분류하는것은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범주화 하는것은 생각하기 귀찮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편리한 도구이지만, 진실과의 거리를 더욱 쉽게 벌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몇년 전 여성혐오의 정서가 오유에 범람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매우 불쾌하고 불편했지만, 상당기간 비슷한
정서에 노출되다보니 나 자신이 그것에 물들어가서 그것에 반대하는 논리를 다시 정성들여 정립해야 했던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자 그런 정서는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자정작용이라는것이 있다면, 그것이 작동한 결과이리라. 사람이 많이 모이면 부대끼고 서로 영향을 받고 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불편하다보니 서로 룰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서 서로 편해지려는 노력을 한다. 이런 일들이 쌓여서 문화가
되고 윤리가 된다. 이런 작용이 제한 없이 일어 날 수 있도록 느슨하지만 온정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준 운영자에게 나는 감사한다.
덕분에 오유는 강력하고 질서정연한 시스템을 가지는 대신, 모든 구성원이 서로 부대끼며 합의한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땅도 파해치고 조각상을 만들기도 하고 집을 짓기도 하며 놀고있다면, 땅은 물론 땅주인의 것이지만 그 위에 세워진
건축물들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것임이 분명하다. 땅주인이 제공 해 준 땅이 있었기에 최초의 이주민이 있었겠지만, 더 많은 사람을 끊임없이
끌어들여 인구를 늘이고 유지하는일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건축물의 역할이 더 크다. 그래서 땅주인과 사람들은 공생하고 협력해야 할 관계다.
자신의 안전이 염려스러워지면 자신의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고 권리를 양도하여 질서를 만들고 시스템을 유지하는것으로 안전을 담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병신량 보존의 법칙에 따른 병신 총량의 증가가 무섭고, 일베가 무섭고, 날 욕할 수도 있는 공격적인 니놈이 무섭고,
그래서 나도 물론 불편해지지만 그런일이 일어날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보호 시스템을 하나씩 하나씩 추가해왔다.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그래서 그 극단에 이르면, 역사는 이런 집단에 다음과 같은 이름을 붙여준다. '파시스트'
오유의 요체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유저들이 만들어온, 그리고 만들어갈 '문화'에 있는거라고 혼자 상상해본다.
누군가가 나서서 만들어내고 지키기를 종용하는 시스템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화를 고사시키고, 앞으로 그런 문화가 생겨날 만한
토양도 망쳐버리는게 아닐까.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나는 오유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것만같아 입맛이 쓰다.
일정 이상의 사람이 모이게되면, 전술했듯이 그것을 범주화 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모은것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어느 한 지점에 모여있다면, 그 그룹 안에서 공통된 몇몇의 경향성은 찾아 낼 수 있을거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경비요원과 안내인들이 서비스를 책임지고 사람들을 지키며 줄세우는 놀이공원의 고객이기보다,
좀 불편하지만 서로 타협하고 동의를 구하며 때로는 서로를 배려하기도 하며 놀아야 하는 동네 놀이터의 주민이기를 바라는것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