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에 간 글을 보고 간단히 고종의 치세를 보자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흥선대원군의 경우 나라를 개혁하려는 생각과 실행력을 갖추었지만 불행히도 그 방향이 복고적인 쪽으로 잡았던게 그가 가진 큰 문제라면
고종의 경우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채 복고적인 성향을 처음부터 견지하면서 그저 전제군주를 순수하게 꿈꾸었을 따름이지요,
가령 광무개혁을 보면 제1조 대한제국은 세계 만국의 공인되어 온 바 자주독립하는 제국이니라와 2조 대한국의 정치는 만세불변(萬世不變)하오실 전제정치이다. 이래로 황제가 입법 사법 행정 군권 등 전권을 갖는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 따라 보자면 은행과 병원등의 설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일반 백성은 사용할수 없었고, 왕실이 운영하는 공장 이외의 직종에만 백성들이 참여할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왕실이 세운 이러한 공업시설은 그 들 자신이 쓰기위해 소규모로 운영하는 수준이었고, 학교나 해외 유학생 역시 왕실이나 일부 상류층만이 향유할수 있었을따름 인데,
과연 철저하게 신분제 좀 더 심하게 보자면 카스트제를 고수하자는 이 것을 조선이 근대화에 앞장섰던 증거라고 볼수 있을지는 솔직하게 저 자신으로서는 의문입니다.
이 뿐만일까요? 운요호 사건의 배경을 보자면 청전즉 대원군이 왕실의 재정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물론 당백전이라는 시쳇말로 병크를 거하게 일으키신 뒤의 일이긴 합니다만 어찌됬든 왕실과 조선 전체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허락하였고 또 성과를 거두고 있던 청나라 화폐의 유통을 갑자기 뜬금없이 중단시켜버리는 바람에 나라안에 디플레이션을 스스로 일으킨 이후에 경강수세를 혁파하여 강화도 일대를 비릇하여 서해안 주요 군영의 군수 물자 공급은 몇달동안이나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운요호 사건을 스스로 일으키신 셈이지요,
별기군의 창설 역시 문제라고 볼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된 식견을 두고 벌이신 일은 절대로 아닙니다.
부인되시는 분과 함께 열과 성의를 다하신 매관매직과 더불어 별기군의 창설 그리고 연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꿔대는 제식 장비와 교관으로 예산을 절단내어 임오군란을 스스로 불러일으키셨습니다.
그렇다고 전투력이 출중한가? 군인들의 경우 훈련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상관을 폭행하는 일도 빈번했지요, 왜냐하면 나는 양반이고 저 상관은 평민이니까 말이지요,
비싼돈 주고 사온 장비를 좀 제대로 써보시겠다는 마음으로 생산 설비 수입한다고 부서를 설립하고 해군을 강화한다고 이것 저것 하셨습니다만 생일 기념이라는 비웃음을 살정더로 거하게 예산 반토막 내시고 수입한 생산설비는 역시나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제식장비와 교관 그리고 의욕 부재등의 이유로 선비들에게 돈 지x 소리를 듣기 딱 알맞게 별다른 실적 없이 녹만 슬어갔습니다.
아 물론 이러한 별기군의 창설과 운용으로 실적을 올리신것은 있기는 합니다, 바로 의병 진압 말입니다.
동학 농민 운동을 비릇한 의병들과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속에 먹고 살길이 없어 난립하는 (물론 순수하게 직업으로서 선택하신 분들도 적지 않게 계시겠지만) 도적들을 진압하시는데 최우선적으로 나서주셨고 좋은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주요한 광산과 철도 부설권 등 이권들역시 거침없이 스스로 헐값에 팔아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계약서 조차 작성하지 못하여 수습조차 안되는 경우가 허다했던것은 둘째치고 왕실 재정의 검소화나 근검 절약 같은 어려운 나라 상황속에서 스스로 앞장서는 군주의 모습조차 없었습니다.
헤이그 특사 사례에서 볼수 있겠지만 그 어떠한 현실적 외교적 식견도 없었기에 이러한 모습을 기대하는게 참 무리다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고종의 거의 유일무이한 장점이라고 한다면 딱 하나 일본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그 하나를 들고 싶을 뿐입니다. 명분과 자금 둘 다를 지니고 있었기에 독립 투사들과 의병들에게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러하기에 20년대까지 고종의 입김이 닿지 않은 항일 투사분들이 없을 지경이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일본에 대한 저항은 순수하게 외교적 현실적 식견에서 비릇된것인가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가 권력이 위협받기에 행한것 뿐이지요,
명성황후 드라마의 성공으로 다시금 재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민비와 더불어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경우이기도 합니다.
비운의 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자면 뭔가 능력이나 하다못해 급변하는 세상에 대항하는 의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고종의 경우는 마지막까지 국가와 백성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살다 가셨을따름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