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군불 때는 저녁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바닥에서 물이 치솟는 부엌에 앉아
저녁 내내 군불을 때거나
하릴없이 청솔가지를 툭툭 꺾어
손톱 밑 때를 파거나 이런 날
아귀가 맞지 않는 문틈 사이로 온몸을 밀어내며
햇살과 그 햇살을 향해 달려드는 먼지를 구경하다
나도 문득, 옹이가 많은 불쏘시개처럼
오래오래 타고 싶었다
김사인, 허공장경(虛空藏經)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중퇴한 뒤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공사판 막일꾼이 되었다
결혼을 하자 더욱 어려워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떨어 먹고 도로 서울로 와
다시 공사판
급성신부전이라 했다
삼 남매 장학적금을 해약하고
두 달 밀린 외상 쌀값 뒤로
무허가 철거장이 날아왔다
산으로 가 목을 맸다
내려앉을 땅은 없어
재 한 줌으로 다시 허공에 뿌려졌다
나이 마흔둘
홍신선, 누가 주인인가
골동가게의 망가진 폐품 시계들 밖으로
와르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지금은 제멋대로 가고 있는
시간이여
그런 시간이
인사동 뒷골목 깜깜하게 꺼진 얼굴의
망주석(望柱石)에 모른 척 긴 외줄금 찌익 긋고 지나가거나
마음이 목줄 꽉 매어 끌고 가는
뇌졸중 사내의 나사 풀린 내연기관 속으로
숨어들어
재깍 재까각 가다가 서다가 하는
이 느림이 삶의 주인이다
우리의 정품이다
권대웅, 게
바다는 언제나 정면인 것이어서
이름 모를 해안하고도 작은 갯벌
비껴서 가는 것들의 슬픔을 나는 알고 있지
언제나 바다는 정면으로 오는 것이어서
작은 갯벌하고도
힘없는 모래 그늘
이기철, 자주 한 생각
내가 새로 닦은 땅이 되어서
집 없는 사람들의 집터가 될 수 있다면
내가 빗방울이 되어서
목 타는 밭의 살을 적시는 여울물로 흐를 수 있다면
내가 바지랑대가 되어서
지친 잠자리의 날개를 쉬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음악이 되어서
슬픈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 될 수 있다면
아, 내가 뉘 집 창고의 과일로 쌓여서
향기로운 향기로운 술이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