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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간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공개
게시물ID : sisa_8316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mplor
추천 : 8/3
조회수 : 193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7/01/08 22: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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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5개월 전 한 학자와 고향 봉하마을에서 가졌던 마지막 인터뷰가 주간조선 최신호에 공개됐다.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는 최근 학술지 ‘저널 오브 컨템퍼러리 아시아(Journal of Contemporary Asia)’ 온라인판에 게재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와 한국에서의 노무현 현상(President Roh Moo-Hyun’s Last Interview and the Roh Moo-Hyun Phenomenon in South Korea)’이라는 영문 논문에서 2008년 12월 8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과 3시간 반 동안 가졌던 인터뷰 일문일답을 공개했다.

김 교수는 지난 8년간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한국 사회와 정치 한복판에 던져져 있다시피 해서 그분의 마지막 인터뷰가 어떤 연유이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최근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 현상’, 특히 2017년 대선과의 연관성 하에서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2017 대선은 야당의 최대 지분을 가진 친노(親盧) 그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주요 시민단체들이 ‘대전환’을 필사적으로 모색하는 상황에서 한국인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내 임기 중 무슨 진전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노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임기 중 이룬 성과에 대한 아쉬움부터 털어놓는다. “나는 내가 대선에서 당선된 것 자체가 역사의 진전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라 믿었고, 그것 자체로 진전이라고 믿었다. 내 임기 동안 중요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가 기대했던 이유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임기 중 무슨 진보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만큼 진전을 이뤘는지도 의문”이라는 말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독단적인 권력이 아니라 규범 또는 사회 상식에 의한 지배가 사회적 문화로서 정착되어야 하고 다시는 후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요즘 보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탈권위주의라는 것이 그래야만 하지만, 나는 얼마나 진전을 이뤘는지 회의가 든다.”

그는 민주주의를 세 가지 요소로 정의하기도 했다. “권력층이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 번째 요소다. 그것이 법의 지배다. (중략)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가 민주주의의 (두 번째) 핵심 요소다. 그리고 (세 번째 요소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이 진전되고 그것이 그 결과물로 실현되어야 한다. 바로 공평한 사회와 사회적 평등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대선 승리를 가져온 대중 운동과 관련해서도 “선거 승리 때까지는 잘했지만 그 이후는 계속할 수 없었다. 나는 시민의 능력을 계속 동원하고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 정치가 자신이 정치 인생을 걸고 싸워왔던 지역주의로 회귀했다는 지적도 했다. “지금 한국 정치는 완전히 낡은 지역구도로 돌아갔다. 지역구도가 깨지지 않았든지 (과거로) 회귀했든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에서 타협의 정치라는 것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임기 중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진전을 이뤘는지에 대해 무척 실망하고 있다. 성과가 없었다.”


2007년 4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가진 '한미 FTA와 한국경제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청와대 사진기자단

◇“2007년 대선 패배는 내 책임 아니다…대선은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후보를 평가하는 것”
그는 현재 한국의 보수 진영은 위기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진단한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보수주의 가치와 기득권의 위기다. 그들은 아마 보수주의가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 동안에 훼손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기득권이 위협받는 것은 진보적 사상에 의한 위협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른 사회의 투명성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좌파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라며 그것을 “근거 없는 불안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보 진영의 내부에 대한 진단도 했다. “진보 진영은 서로 중첩되는 세 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하나는 진보 진영이 자기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또 그들은 매우 적대적인 내부 경쟁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중도실용주의를 받아들인 것을 진보 진영에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나는 광범위하게 중도실용주의에 동의했다. 목표와 현실 사이의 차이만큼 후퇴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넘어서 자유무역협정(FTA)까지는 가버렸다. 실용주의 선까지 가버린 것이다. 나는 실용주의적인 입장과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나는 권력자가 마주치는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였고, 그 이상으로 실용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해 나에 대한 불만이 늘었다”면서 “그들(진보 진영)은 지난 정부가 바뀌고 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내 리더십의 결함으로 비판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없음을 강조한다. “어떤 나라든 10년이 지나면 정부가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다. 행정부의 자연스러운 교체일 수 있다. 대선은 새로운 후보에 대한 평가이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다. 그들(진보 진영)이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대선 패배에 대한 비판까지 한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손을 맞잡은 노무현 전 대통령/연합뉴스

◇“북한, 햇볕 용어 싫어해”… “한·미 정부 간 갈등은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자신의 정책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부터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햇볕’ 정책을 ‘평화와 번영’ 정책으로 바꾼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과 달랐나? 그렇지 않다. 그런데 왜 이름을 바꿨나? 그것은 북한이 ‘햇볕’이라는 용어에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파트너가 의구심을 갖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그들은 ‘햇볕’이라는 용어가 그들이 옷을 벗어던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던 김정일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는 나에게 어떤 의심도 없이 말했다”며 “적어도 그가 나에게 말할 때 어떤 것도 숨기거나 복선을 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이 권좌에서 물러날 경우 “북한의 강한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누가 리더가 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리더십이 흔들릴 때 보통은 바깥을 향한 강경정책을 취하는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리더십이 흔들릴 때 강경정책이 취해질 가능성이 높고 그런 상황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도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미국과는 불편한 문제들이 없었다. 비록 서로 관점은 달랐지만 미국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한 건 없다. 그들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존중했다. 우리도 일방적으로 미국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자신이 반미 정책을 적극 옹호한 것으로 비쳐진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대선 기간 내가 했던 것에 그렇게 많은 의미 부여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하지 않았는데 언론이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반미주의가 위험하고 한국이 반미주의에 빠지면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언론이 반복적으로 말하길래 ‘우리가 반미주의를 채택하면 어떠냐. 그게 우리를 망하게 하느냐. 누군가 미국에 반대하기를 원하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나는 (대선 기간) 반미 노선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신념이 부족하다”
그는 일본과 비교해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다른 부러움을 사고 있고 그런 측면에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도 해보자’ 등과 같은 국가적 자부심이 한국의 꿈이었다. 지금은 속도가 좀 늦춰지긴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불을 붙인 이래 그런 접근은 계속돼왔다. 국제무대에서도 모든 사람이 한국을 칭찬한다. 내 임기 동안에도 외교적인 일로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한국을 배우기를 원하는 개발도상국의 많은 국민들이 있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는 “나는 국가 주도 경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단 하나 포인트는 개발도상국 모델에 관한 모든 것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는 국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경제적 성공이 권위주의적인 통치 국가에서만 가능한가? 그러한 국가들에 다른 공통적인 요소는 없는가? 이런 것들이 나한테 가장 헷갈리는 이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자부심이 계속될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내부적인 갈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안에 많은 회의와 갈등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신념이 부족하다.”
 
2008년 12월 8일 봉하마을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터뷰한 김형아 교수/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 김형아 호주 국립대 교수는?
김 교수는 본래 박정희 시대 연구자로 명성을 쌓은 학자. 특히 박정희 시대 추진됐던 중화학공업 정책에 대한 실증 연구를 진행해왔다. 오원철 전 경제수석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참모들과의 인터뷰와 정책 자료를 바탕으로 ‘Korea’s Development under Park Chung Hee: Rapid Industrialization, 1961~1979(박정희 지도하의 한국 발전: 급속한 산업화, 1961~1979)’라는 저서를 2004년 출간했다. 김 교수는 1970~1980년대 산업전사(産業戰士)로 불린 대한민국 1세대 남성 기능공들의 성장사를 2000년대 초부터 추적 분석해 ‘Industrial Warriors: South Korea’s First Generation of Industrial Workers on Post-Developmental Korea(산업전사들: 구조조정 이후의 대한민국의 1세대 기능공들)’이라는 논문을 2013년 ‘아시안 스터디스 리뷰(Asian Studies Review)’라는 학술지에 발표했고 현재는 이 연구의 단행본 출판 준비를 하고 있다.

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야 관련 자료를 읽었을 뿐 그 이전에는 아는 바도 없었고 연구 동기도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한국 현대사가 박정희와 노무현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대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기사 전문은 1월 6일 출간된 주간조선 2440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08/2017010800717.html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08/20170108007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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