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실은 네가 내게 두 번째로 이별을 고한 날. 난 그저 널 한번 끌어안고는 보내주었지. 그리고 혼자 술을 마시는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던 밤이 있었지. 난 밤새 너를 생각하다 새벽 3시쯤 잠이들었지. 그 밤이었어. 내가 뭔가를 깨닳은 것은. 네가 다시 내게 온다면 세 번째는 없을 것 같았고 만일 세 번째가 온다면 그것이 정녕 마지막이라고. 네가 내게 말을 건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다음날 아침, 넌 내게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사달라고 졸랐지. 우리 그날의 점심은 떡볶이가 아니였어. 난 부랴부랴 씻고 나가 너를 만났고 우린 다시 사랑했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좋아보였어. 처음처럼, 그 언젠가처럼. 정말 웃기게도 너무 부어 반밖에 못뜨는 눈으로 나온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우린 언젠가처럼 서로를 안았고 보듬었지. 다시 내게 활력이 찾아왔지. 조금 더 힘내보자 하는 계기가 되었지.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내가 우려하던 세 번째가 찾아왔고, 나는 직감한대로 널 더 이상 볼 수 없게되었지.
항상 모든 일이 자기 마음대로 안된다는 말이 다시끔 새겨지는 순간순간이었다. 바로 엊그제까지만해도 즐겁게 사진을 찍고 데이트를 하던, 우리의 얘기, 우리의 미래 얘기를 하던, 그런 우리였었다. 잘자 하고 하루를 끝내고 좋은 아침, 안녕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다른 연인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고 지내는 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우리 사이가 좋으면 그저 좋았었다. 미친 척하고 우리가 갔던 거리들을 혼자 한 번 거닐어 보고, 같이 갔던 식당에 혼자 가서 밥을 먹으며 무언가 빠진 것이 없는지 혼자 찾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결국 빠진 무언가는 찾을 수 없었고 눈앞에 그날의 이야기들만 가득비춰졌다. 그렇게 지내는 내게도 위기는 있었다. 우리가 작거나 큰 다툼을 벌인 곳들에선 그때의 서로의 사과보다 더욱 큰 미안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마치 충격요법처럼 내게 다가온 짜릿함과 후회, 그리고 그리움은 후련하면서도 서서히 가슴의 떨림으로 자리잡았으며 그날도 취하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잊혀짐이라는 것은 실로 간단해 보였다. 신이 내린 가장 큰 축복이 망각이라고 했던가. 어느새 잊혀졌고 어느새 굳이 꺼내려고 하지 않으면 잘 나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 불현 듯 생각 났고 네가 내게 선물한 티셔츠를 보면 생각이 났다. 사무치는 그리움이란 이름속에도 아직도 난 네가 선물한 지갑을 쓰고 있고 네가 준 향수를 뿌리고 너의 향기가 나는 크림을 바르고 있었다. 그런 일상에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크지 않아보였다. 단지 쳇바퀴 같은 일상 속 단순한 특별 이벤트 하나가 빠진 것처럼 일상은 평온했다. 그동안 연락하지않던 친구와 연락을 하고 문자를 주고 받으며 너와 했던 너와 같이 지냈던 시간들에 대한 빈자리를 차곡차곡 메우고 있었다. 그러다 술을 마시면 그 메움이 매미에 쓸려 날아가고 흘러버렸다.
사실은 너를 그리워 하는 것을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너와 함께 했을 때도 난 너를 그리워하고 항상 갈구했으니까. 여전히 넌 꿈속에서 날 찾아와 두드리고 떡볶이를 먹자고 조르고 만나서부터 날 놀리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시 한 번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즐거웠고 그날의 냄새는 너무 좋아 맡고 또 반복한다. 처음 만난 날처럼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고 비를 비해 뛰어다니는 우리를 만나고 어느 가게의 차양아래서 비를 피한다. 그걸 보는 그 속의 나는 행복해했고 당시의 나도 행복해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너의 손을 잡고 그 가게의 차양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눈을 떠 정신을 못차리며 졸린 눈을 씻고 일터에 나와 열심히 일을 하며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 지도 모르게 퇴근하고 또 술을 한 잔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