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imagination.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luBX0phYBvE
이원, 거리에서
내몸의 사방에 플러그가
빠져나와 있다
탯줄 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비린 공기가
플러그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몸 밖에 플러그를 덜렁거리며 걸어간다
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둥둥 떠다닌다
최정례, 나무가 바람을
나무가 바람을 당긴다
이 끈을 놓아
이 끈을 놓아
끌려가는 자세로 오히려
나무가 바람을 끌어당길 때
사실 나무는 즐겁다
그 팽팽함이
바람에 놓여난 듯
가벼운 흔들림
때론 고요한 정지
상처의 틈에 새 잎 함께 재우며
나무는 바람을 놓치지 않고
슬며시 당겨 재우고 있다
세상 저편의 바람에게까지
팽팽한 끈 놓지 않고
강연호, 감옥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 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들어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정끝별, 밀물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박남준, 흰 부추꽃으로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을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