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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녀가 죽던 날, 꽃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
게시물ID : lovestory_831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5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23 20:20:58

사진 출처 : http://diyojeninficisi.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m5Eu1mRNd2g





1.jpg

조지훈민들레꽃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냐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2.jpg

최문자꽃은 자전거를 타고

 

 

 

그녀가 죽던 날

꽃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

그녀의 남자가 입원실 현관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막 아네모네 꽃을 내리려고 할 때

그녀의 심장은 뚝 멎었다

꽃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영안실 근처로 갔다

죽을 자리에서도 타오른다는 아네모네가

놀란 자전거를 타고 앉아

헛바퀴만 돌리고 또 돌렸다

 

그날

꽃은 온종일 자전거에게 끌려 다녔다

꽃을 태운 자전거는 참았던 속력을 냈다

꽃도 그녀처럼 자전거를 타고 앉아

남자의 등을 탁탁 때리며 달렸다

꽃은 내부가 무너지도록 달렸다

마지막 꽃 한송이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뭐라고 말했지만

바람이 그 말을 쓸어갔다

 

그날

빈 자전거 한 대

고수부지 잡석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3.jpg

황학주커어브

 

 

 

문방구 근처로 명랑한 선생님의 백묵처럼 눈발이 날린 뒤

도로 비가 오고

블록담을 다 돌아가지 못해

떠오르는 당신의 창

있다가 없어진 튼튼한 구식의 가전제품 모델 같은

안아도 안아도 얼음배긴 염창동의 그리운 사랑이여

사랑은 크게 흘러내리는 눈물 끝을 믿는 것이어서

이담에 보면 어둡게 오래 선 우리 사랑도 보이게 될까

풀잎들은 경사지를 잡아맨 채 강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가쟁이 근처 사고가 있었던 듯

새집 둘레는 얼어깨진 화분처럼 걸려 있다

이 한강 줄기에 저렇게 작은 집이 아프고

더 작은 내 마음의 집 안으론 비의 넌출이 쑥쑥 걸어오는데

교량 위 도저히 변하지 않는 바쁜 사람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을까

헤어진 당신과 나는이 시대는

커어브가 가능할까 또 조용한 눈물은 직진해 내린다






4.jpg

이홍섭내 마음 속의 당나귀 한 마리

 

 

 

내 마음 속에는

언제부터인가 당나귀 한 마리 살고 있다

귀가 몹시 커다랗고

고개를 잘 숙이는 당나귀

 

그 당나귀가

잘 우는 당나귀인지잘 안 우는 당나귀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오랜 친구를 찾아가거나

한없이 느린 걸음으로

이 도시의 외곽을 배회할 때

어느덧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당나귀 한 마리

나는 이 당나귀가 좋아

풀만 먹고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5.jpg

박서영밤비

 

 

 

빗방울이 적시는

기억의 방은 모두 다르다

폐허의 모든 것

만신창이의 모든 것

 

비는 골고루 시원하게 할퀴어준다

허덕이면서

세차게

엄마의 젖을 빨아대는 아이처럼

구름은 입술을 움직인다

 

이렇게 할퀴는데도 조금 젖을 뿐이다

너무 빨리 몸이 말라 버린다

적어도 건물의 한 귀퉁이는 찍어내야

패망이라고 할 수 있다

 

목에 걸린 옷은 짐승처럼 핏방울을 떨어뜨리며

대원동 시절 미쳐 집 나간 언니처럼

사지를 비틀어댄다

만신창이의 모든 것

 

웃음소리인 듯

울음소리인 듯

창 밖에는 여전히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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