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지난 날들을 세삼스럽게 핥고싶은 날이 있어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니고 그냥 일기 쓰는 것 처럼 아무 생각 없이 슬프고 기쁘고 싶고
어떤 생각을 하던 어떤 글을 쓰던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못할 것 같은 확신이 드는 밤이 있어
오늘이 딱 그런날이야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날 8월22일 저녁 11시52분
누구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내 나름의 보물들이 저장되어 있는 메모장속
문뜩 그 시를 보고 글을 쓰고 싶어졌어
그 시는 대충 이렇게 생겼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 그것이 사랑이라면>
작은 교실에 남녀는
언뜻 보면
첫사랑이고
사람 많은 교실에 남녀는
언뜻 보면
짝사랑이고
나중에 크고 보면
풋사랑이 될것이다
단정지을수 없다는 것이
남녀사이라는 것이
언뜻만 되어
제대로 알수없다
짝사랑이든
첫사랑이든
풋사랑이든
제대로 알수없는것이
사랑이다
저 시를 처음 만난건 반년 전
오늘과는 다르지만 충분히 평범했던 날 정오쯤
가장 믿고 사랑했던 사람이 나에게 준 오랜만의 선물이었어
글쓰는걸 취미로 하는 나는 그사람에게 아침마다 시를 써주곤 했었지
그날 내가 써줬던 시가 몇번째 시였는지 어떤 시였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저 시는 내가 그 사람에게 받아본 첫번째 선물이자
첫번째 받아보는 답시였어
물론 나는 내 말과 글에 답장을 받는 일에는 익숙해 져 있었지만
또한 다른 사람이 쓴 시를 본적은 많이 있었지만
그 사람이 그날 정오의 햇살과 함께 건네준 저 시의 수신처는
정말 마음의 가장 가까운 곳 이었어
단순히 시만 본다면 절대로 아름답고 느낄 것이 많은 시는 아니었어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 것도 아니었고
마음을 뜨끔하게 하는 송곳같은 말도 없었고
우리가 모두 아는 사랑을 그저 나열하고
다시금 그 아름다움을 깨닫게만 해주는
솔직히 별 볼일 없는 시였지
하지만 나는 나름 시를 쓰는 사람이었어
아직 서툴기는 하지만 감정을 구부리고 주물럭 거리고
내 마음을 메모장 속에 한 글자 한 글자 그리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그런 나에게 있어서
아직 감정에만 앞서 있는 성숙하지 못한 시인인 나에게 있어서
그날, 그래 그날 정오의 한가함과 함께 받은 답시는
정말 특별했어
정말 아름다웠어
그날 정오 전 까지 나의 시에는 이유가 없었어
뭔가 생각나면 싸지르는 일회용 욕구 충전기였어
넘쳐나는 감정을 소비할 곳이 없어서 한없이 쓰기만 하는
이유 없는 영혼 없는 글이었어
그날 정오의 답시는 나의 글에 목적을 가져다 주었어
시도 또한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서로 나눌 수 있는 것 이라는 걸 께닫게 해주었어
그래서 너희들도 시를 썼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시로도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도망칠 필요 없어
너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기억을 한 단어 한 단어 이어 가기만 하면 되는거야
너가 쓴 시가 아무리 유치해 보이더라도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또는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을 만큼 복잡하더라도
아무 상관 없는거야
너가 시를 썼다면, 너는 이미 시인이야
시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시를 쓰는거야
그리고 시인이 됬다면
시로 나누는 대화의 아름다움도
답시의 달콤함도
또한 느껴보았으면 좋겠어
말로 전할 수 없는
무언가 형용 할 수 없는 당신의 감정과 추억과 기억들을
시는 전할 수 있어
너의 마음을 가장 솔직히 말하는 시로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아름답고 솔직하고
그래, 한없이 아름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