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후에 오는 것들.
마음은 아프고 보고싶었지만 덤덤했다. 누군가 나의 이별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적어도 오늘 통장내역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당혹스러웠으며 뭐라고 설명하기에도 복잡한 기분. 1개월, 3개월, 6개월, 버튼을 누를때마다 그녀와의 추억이 그득그득했다. 아니, 흐르다 못해 넘쳐버렸다. 오롯이 나의 것은 정말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많이 마셨던 편의점 천원커피, 휴대폰 요금, 교통 요금 뿐이었다. 가게이름, 매장명들을 볼 때마다 그녀의 표정 얼굴들이 생각이나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진첩을 열었다. 날짜를 확인하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 닫고 은행앱을 보고 다시 닫고. 그날의 표정과 옷차림이 하나하나 떠오르자 이젠 그날의 대화들이 생각이 났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을 일으켰다. 동시에 엉덩이골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소름이 돋고 찌릿했다.
아니, 안괜찮아. 내 대답은 통장내역을 보고나서 바뀌었다.
애초에 사진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는게 큰 실수였다. 지금의 나에겐 판도라의 상자만큼이나 잔혹한 결과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건 거의 내 휴대폰인데?’ 하며 내 사진첩을 볼 때마다 그녀는 말했었다. 실제로 그러했고 만약 그녀의 사진을 지운다면 남은 사진은 스크롤 한두개쯤 내려갈 것 같다. 나비효과처럼 정말 사소하고 작은 행동이 2003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매미처럼 거대해졌고 마음속을 휘저어버렸다. 매미는 우리가 같이 살자 꿈꿔온 좋은 브랜드 아파트를 날려버렸고 엄지를 치켜들며 같이 감탄하던 맛집의 지붕을 날려버렸다. 그녀에게 선물했던 인형들이 흠뻑 젖은채 널부러졌고 같이 탔던 비행기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 켜있는 은행앱을 보고 끝이 났다.
스물아홉의 백수, 내 타이틀은 그랬다. 변변찮은 기술이 없었고 경력은 중간에 끊겼으며 나이 또한 발목을 잡았다. 2년전 잘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고, 2년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게되었다. 2년정도의 공백후의 취업활동은 내게 큰 산처럼 울창하고 높게 다가왔다. 용돈벌이 아르바이트, 일용직 잡부의 생활도 정리하고 싶었다. 내년에 서른이라는 나이는 올가미처럼 내 목을 옥죄어왔고 취업시장은 말로 듣던 것보다 힘들었다. 1개월간의 인턴 생활 후 채용불합격, 어찌어찌 들어간 회사는 근무 여건이 다르고 급여또한 상이했다. 그리고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애석하게도... 라고 시작하는 문자 메시지들, 그렇게 또 이력서 타이핑을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했다. 글쓰는 재주는 늘어서 아무리 큰기업이라도 이력서는 통과하였다. 학력과 경력에서 많이 밀린다고 대놓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 2년동안 외국에서 많은 걸 보았다, 느꼈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건 그저 소소한 일상같은 것이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내게 많은 깨닳음을 주었다. 왜인지모를 박탈감과 무기력감. 그 모든 것들을 못느끼게 해준 그녀였다.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조금이나마 돈을 모으기위해 짧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용직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였다. 단지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하며 그 시간을 더욱 즐겁게 하고 싶었다. 그런 스물아홉이었다.
어리지도 않은, 그렇다고 나이가 많지도 않은 스물아홉에. 난 이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