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시청자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위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오유에서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 "가야의 백성? 세상 어느 천지에 가야의 백성이 있단 말이냐? 모두가 신국의 백성이다. 모두가 나의 백성이야" 위 내용은 어제 방송된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장면에서 선덕여왕이 외쳤던 대사입니다.
전 오늘 잠시 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친일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수업을 해야 합니다. 일제시대에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심판을 내려야 하는지 토론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 드라마를 본 후 전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허구적 작품이라는 사실과 당시와 지금의 시간과 상황의 차이를 고려한다고 해도 선덕여왕과 가야계의 대립은 너무나 식민지 시대의 한일관계와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민족 개념이 정확하지 않았다든지 당시의 피지배층 입장에서 국호가 신라든지 가야든지 상관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만, 드라마가 현재 제작되었고 방영되기 때문에 그 현재적 가치에 대한 부분을 따져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드라마의 주인공이 타국을 합병한 국가의 지배자여서 더욱 난감했습니다.
선덕여왕의 줄거리는 아시다시피 삼국통일을 향한 선덕여왕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라에게 강제로 흡수당한 가야계는 '복야회'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어 독립을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신라에 투항한 가야의 왕족인 김유신은 더 큰 포부로 민족이 아닌 선덕여왕이라는 주군을 선택하게 됩니다. 가야계가 신라인으로 거듭나 삼한통일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가야가 진정으로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유신과 복야회는 결국 선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도록 돕게되고 왕이 된 선덕여왕은 가야인을 신라인과 동일하게 대우할 것을 약속하고 실행합니다. 하지만 복야회는 해체되지 않았고 선덕여왕은 이를 자신에 대한 신라에 대한 반역으로 여깁니다. 가야계의 선처를 구하는 유신에게 선덕여왕은 가야라는 나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신국의 백성일 뿐이라고 외칩니다.
자 이 구도를 일제시대로 옮겨봅시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동아공영'(아시아의 공동 번영)의 꿈을 내세웠습니다. 일본에게 강제로 흡수당한 한국인들은 수많은 비밀 조직을 만들어 독립을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에 투항한 친일파들은 더 큰 민족과 아시아인의 전체 번영이라는 더 큰 포부로 일본을 선택하였다고, 한국은 일본과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떠들면서 다녔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인으로 거듭나 대동아공영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한국이 진정으로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친일파들은 결국 일본의 침략전쟁에 협조하고 일본은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이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과 비밀조직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일제는 이를 반역으로 여기고 모두 체포합니다. 일제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직 천황의 백성일 뿐이라고 외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할 뿐 진지먹으면 안되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신라=일제, 가야=식민지 한국, 유신=친일파, 복야회=독립운동단체로 오버랩되면서 뭔가 모르는 씁쓸함이 느껴지네요. 물론 작가들이 의도를 가지고 이런 설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가야 병합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다양한 견해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업을 앞둔 지금 일제와 친일파들이 드라마로 인하여 미화되는 것은 아닐지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