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uandromeda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Uu26boHhUMw
김재진, 나무
문득 눈앞의 세월 다 지워지고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수첩 속에 빽빽하던 이름들 하나같이
소나기 맞은 글씨처럼 자욱으로 번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세파에 치어 각양각색인
남루 또한 지나간 상처 마냥 눈물겹고
서 있는 사람들이 한 그루 나무처럼
이유없이 그냥 아름다울 때 있다
가파른 세월이야 지나면 그뿐
코끝을 감고 도는
한 자락 커피 향에 두 눈을 감고
비 맞는 나무처럼 가슴 적시는
무심한 몸놀림이 아름다울 때 있다
김윤호, 어머니
빈 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피어날 때
머리에 수건 쓴 어머니가 보인다
싸리문을 조금 열고 마당을 지나
흰 발자국을 따라가면
내 유년의 검정고무신이
아직도 당신의 품 안에 놓여있다
그 날 나는 연을 띄웠다
낯 선 곳으로 떠가는
내 시선의 끝을
언제나 잡아주시던 어머니
한 잔 소주에 비틀거리는
타향의 꿈 속에
오늘은 나를 업은 연이 되어
굽어보시는 어머니
김용택, 그리운 것들은 다 산뒤에 있다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김영교, 얼음꽃
먼산 하얗게
얼음꽃 피었다
오는 계절을 망각한 듯
봄색시 오시는 길
깊은 겨울이 들어와 있다
밤새 떨고섰을
새순 한잎
들꽃 한다발
시린 마음에
가슴 저려온다
봄속
겨울이 있고
겨울속
봄이 있는 초원
그 안에
내가 있다
한풍작, 그림자
무게도 없이
두께도 없이
쓸어져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춤추며
동행하며
가볍게 만나고
소리 없이 헤어진다
기쁨의 앞에 서서
슬픔의 뒤에 누워서
어둠 속에서 살 수 없는
빛이 준 선물
사람의 물감으로는
물들일 수 없는
사람의 뜻으로는
묶어 둘 수 없는
바위의 그림자는
바위만큼 무겁고
나무의 그림자는
자란 뿌리만큼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