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게시물ID : panic_829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두까치인생★
추천 : 55
조회수 : 5129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5/08/31 22:02:13
안녕하세요.
매일 구경만 하다가 글을 올릴때도 있네요.
시작
군에 가기 전 여행을 한번 가야겠다 싶어서 휴학을 하고 시골의 고향집에 내려와 호프집 알바를 몇 달 했을때 겪었던 일이다.
위치는 하도 시골이라 번화가...라고 하긴 뭐하지만, 번화가라는 곳과 약간 떨어진 골목에 있던 고풍스러운(?)호프집이었다.
한달 95만원 받고 오후 다섯시 반부터 새벽 한시까지 일 했었었다.
정말 손님이 없던 호프집이었다.
(그 당시 기억으로 많이 받는게 110~120수준)
이십만원 정도의 갭이 있었지만..
일주일에 열테이블 받으면 사장님이 놀랄 정도로 손님이 없던 곳이었다..
어떤주는 한 테이블 받을때도 있었다.
일이 끝나면 그냥 오늘 수입은 얼마며, 이러이러한 손님들이 왔었습니다.. 라고 보고했었는데, 그 사장님은 몇 테이블을 받던, 얼마를 벌던 그저..
"그래, 고생한다." 라는 한마디로 일관했었다.
처음엔 돈도 안돼는 가게를 왜 알바까지 써가며 붙잡고 있는지..
당시 어렸던 내가 생각하기에 참 안돼보였고, 얼마나 갑갑하면 이걸 부여잡고 있으실까..라는 쓸떼없는 생각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알고보니 사장님은 부산에 큰 화방을 두개나 운영하던 부자였다.
그 뒤론 그냥저냥 취미삼아 고향에 호프집 하나 운영하는거라
생각했다.
사장님 친구분들도 종종 안부차 들르셨기에..ㅎ
그리고 주방엔 요리하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항상 눈 화장을 짙~게 하시고 소보루빵을 엄청 좋아하셨다.
사장님과 할머니는 절친이었고.. 오랫동안 알던 사이였다.
연세가 팔십도 넘은 분이셨는데, 다른 주방장을 안 구한다고
항상 투덜거리던 할머니였다.
연세가 너무 많고..
이제 좀 쉬는게 맞는데..라는 생각 문득문득 들던 할머니였다.
매주 수요일은 사장님이 가게에 오시는 날이었는데, 양손 가득히 소보루빵을...
다른빵 하나도 없고..
오로지ㅋㅋ 소보루빵만 많이 사와서 할머니께 드리곤 했다.
돈 아끼는가 싶어서..
"사장님 다른빵도 많다 아입니꺼? 저거만 저래 왕창 사드리면 할머니 질리가 우짭니꺼." 했더니,
다른빵 일체 안 드시고, 오로지 소보루빵만 드신다고 했었다.
사장님이 가게 들르실때마다 할머니는
"아 주방장 구하라카이.. 내 이래가 은자 일 몬한다 안카나"
라고 투덜거리셨는데 그때마다 사장님은..
"할매, 집에서 뭐할끼고. 그냥 바람쐬고 돈도 벌고 좋다아인교"
"집에 있으믄 없던 병도 생기. 고마 그냥 마실나온다 생각하소"
하곤 달래셨다.
할머닌 항상 깔끔하게.. 까만 원피스를 입고 다니시던 멋쟁이 셔서(물론 두벌로 하루이틀 바꿔 입고 다니시는거지만) 할머니댁에 가보기 전까진 그냥 평범하게 사는 분인줄 알았다.
삼개월 쯤 지난 어느 겨울밤은 손님이 엄청 많았던 하루였다.
평소에 없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많이 오니..
주방도 봐주면서 정말 바빳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그날따라 몸이 너무 안좋다고, 사장님께 연락드리고 일찍 오프를 하려는 차에.. 한테이블 두테이블 차기 시작하면서 바빠졌다.
중간에 한번 단체손님이 나가서 싹 빌때가 있었는데, 할매 몸도 안 좋은데 고마 집에 갑시다 하니..
"이런날 잘 없다. 이런날이라도 돈 벌어주야될꺼 아이가"
하시면서 그날 새벽세시? 네시 까지 일 하고.. 몸이 너무 안 좋다 하시길래, 할머니를 모셔다 드렸는데....
계단도 몹시 가파른 삼층 옥상에 비닐로 덮은 움막같은 집이었다...
평소 집 이야기는 일체 안 하시니 그리 사실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리고 어쩌다 보니 알게된 할머니 월급은.. 그 당시 절대로 적은돈도 아니었고, 오히려 과한 액수였다.
할머니께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 하셨는데, 정말 피곤해 보이셔서 어서 주무시라고 바로 나왔다.
잠시나마 들어갔던 집은 얼음장 같았고, 나오면서 비닐에 손을 얹으니 거기가 더 따뜻할 것만 같았다.
할머니댁에서 우리집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어서 나도 집에 도착해 대충 씻고 자려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뻐꾸기소리가 미친듯이 울렸다.
가게에는 두가지 벨소리가 있다.
손님이 울리는 테이블 벨소리와, 주방 할머니께서 누르시는 뻐꾸기 소리가 있었는데..
꿈에 할머니께서 시퍼런 한복을 입으시곤.. 다급한 표정으로 그 뻐꾸기벨을 미친듯이 누르시는것이었다.
잠에서 깨보니 꼴랑 이삼십분이 지나있었고..
이상하다 불안하다 싶어서 대충 옷을 입고 가게로 갔는데,
탄 냄새가 진동하고, 전기 코드에 합선이 되어서 줄줄이 불이 붙고 있었다.
불난걸 처음봐서 허둥지둥 의자위에 있던 담요로 덮어서 손발로 꾹꾹 눌러끄고 사장님께 전화드렸더니 가게로 나오셨고, 넌 어떻게 이시간에 가게 나올 생각을 했냐길래 꿈 얘기를 드리는 순간,
둘다 할머니 댁으로 뛰었다.
할머니 비닐집 앞에서 할머니 할머니 하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길래 손이 들어갈만한 구멍을 대충 뚫어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할머니는 이불을 돌돌 말고 계셨는데 돌아가신 뒤였다..
할머니 장례를 사장님이 치루셨는데, 나도 삼일내내 상주했었다.
가족이라곤 작은딸이라는 사람 딱 한명을 끝으로 아무도 오지 않다가..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멀쩡한 큰아들 둘째아들이 '잠깐' 왔었다.
그렇게 장례가 끝나고 언덕인가..
어딘가 앉아서 사장님 얘길 들어보니..
할머니께 큰딸도 한명 있었는데 몇년전에 어마어마한 빚덩이를
할머니께 떠넘기고 잠적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께서 계시던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도 모자라..
주방 일 해서 버는 돈도 그 빚을 갚는다고 그렇게 사셨던 것이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집을 팔때도..
그 비닐집에 들어가실때도..
사장님께서 그렇게 도와드리겠다고 하셨는데, 자기도 두 아들이 있다면서.... 일체 아무것도 받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잘난 두 아들.
재미가 없었죠. 그당시앤 무섭고 신기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건 약간 각색해서 썼으니 이해바랍니다. 13~4년전 일이라 ㅎ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