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marina--hoff.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43FslVvvc8M
정끝별, 살구꽃이 지는 자리
바람이 부는 대로
잠시 의지했던 살구나무 가지 아래
내 어깨뼈 하나가 당신 머리뼈에 기대 있다
저 작은 꽃잎처럼 사소하게
당신 오른 손바닥뼈 하나가 내 골반뼈 안에서
도리없이 흩어지고 있다
꽃 진 자리가 비어간다
살구 가지 아래로 부러진 내 가슴뼈들이
당신 가슴뼈를 마주보며 꽃 핀 자리
한 잎 뺨 한 잎 입술 한 잎 숨결
지는 꽃잎도 저리 인연의 자리로 쌓이고
문득 바람도 피해간다
누구의 손가락뼈인지
묶였던 매듭을 풀며 낱낱이 휘날리고 있다
하얗게 얼룩진 꽃 그늘 아래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부쳐준 오래된 편지 한 장을 읽으며
곽정숙, 가슴으로 쓰는 편지
청아한 달빛이다
허공에 걸려 있다
적막을 깨고 있다
종종 걸음 가고 있다
누구를 그리워 우나
찬바람 한을
하이얀 안개 그림
그대에게 보내는데
편지를 써 보낸다
겨울의 긴 밤을 본다
가슴 가득
썼다가 지우고 또 쓰고 있다
부치지 못하는 사연 얽힌 편지인데
먹물이 핏 물이 된다
가슴 시린 편지다
이승민, 꽃으로 피어 그대 품에 닿으리
절망이 죽음보다 깊을 수도 있나니
어둠은 시간 지날수록 짙어오고
사랑은 그리움으로 간절하리
바라지 않아도 이별은 성큼 다가오고
울어도 소리 없는 목멘 나날들
눈 감으면 더욱 또렷이 떠오르는 순간들
당신의 날개로 잠시나마 자유로웠던
행복과 사랑 머문 자리
꽃으로 피어 그대 품에 닿으리
고정희, 강가에서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둑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쪽 뚝 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 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어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고은, 늦은 꽃
강물이라면
어느 구비 두런거리며 감돌아오느라고
강물 위 산이라면
그 산그림자라면
어느 마루 넘어오느라고
어느 가녁 떠돌이였다가
고개 수그려 돌아오느라고
이다지도 늦게 와
몇 송이 꽃으로 피어 있는가
슬픔의 절반이 그리움이라면
더 슬퍼하여라
우르르 몰려와
여기저기
환히 깔깔대던
그 숨막히는 꽃시절 지나
다 흩날려 꽃비 내리던
어수선히 멍든 가슴 며칠이나 통으로 지나서
정녕 꽃으로는 벙어리일밖에 없는
이 적적한 시각에
이다지 뒤늦게 와
그렇다고 웃음도 아닌 서러운 울음도 아닌
맨 얼굴로 가만히 피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