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육아 휴직’을 쓸 거라고 했더니 ‘진짜 쓰냐, 간도 크다”라는 말이 돌아왔지요.”
롯데물산의 서규하 책임(만 37세)은 지난 5월 한 달 동안 남성 육아 휴직을 다녀왔다. 서 책임은 다행히 회사가 적극적으로 남성 육아 휴직을 장려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휴직계를 낼 수 있었다.
▲ 사진=연합뉴스
◆ “있어도 못 쓴다, 남성 육아 휴직”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여성 인력 활용에 관심을 보이자 기업들도 여러 출산·양육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출산·육아 제도는 여성 근로자 뿐만 아니라 남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마련되고 있다. 엄마 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출산과 육아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남성 출산·육아 제도는 ‘육아 휴직’이다. 육아 휴직은 만 8세 이하 혹은 초등학생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남녀근로자가 양육을 목적으로 사업주에 휴직을 신청하는 제도다. 정부도 제도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남성 근로자들에게 육아 휴직은 ‘그림의 떡’이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 육아 휴직을 신청하기 어려워서다.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7616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의 8.5%에 그쳤다.
서 책임은 “남성 육아 휴직 제도의 성공 여부는 회사 경영진의 의지에 달렸다”라며 “회사가 이용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올해 1월 1일부터 전 계열사에 ‘남성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롯데그룹의 남성 근로자들은 배우자가 출산을 하면 최소 1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육아 휴직을 사용해야 한다.
서 책임은 “회사 인사팀이 지속적으로 배우자의 출산 예정일 등을 물어보면서 육아 휴직 제도 이용을 확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라며 “동료들도 한 명이 빠지면 업무량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향후 본인들도 사용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 이해해 주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 조선일보DB
◆ “휴직 기간 월급 깎여, ‘돈’ 무서워 못 써”
남성 육아 휴직 제도의 숨겨진 문제점은 ‘돈’이다. 남성 근로자들이 여건이 되어도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육아 휴직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육아 휴직을 하는 근로자들에게 첫 3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80%(상한 150만원, 하한 70만원)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첫 3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40%(상한 100만원, 하한 50만원)까지 지원해줬다. 이달부터 금액이 오른 것이다. 둘째 아이 육아 휴직자는 최초 3개월간 지원 상한액이 200만원이다.
그러나 남성 육아 휴직자들은 육아 휴직 기간 동안 월 100~15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남성 근로자가 외벌이일 경우에는 월급이 줄어드는게 훨씬 더 부담스럽다.
롯데그룹의 서 책임 또한 육아 휴직을 한 달 이상 쓸 수 있었지만, 월급이 줄어드는게 부담스러워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롯데그룹은 육아 휴직 첫 달은 정부 지원금에 회사 지원금을 얹어 통상 임금 100%를 보전해 주고 있다. 첫 달은 월급이 깎이지 않기 떄문에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데 부담이 없는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 남성 7616명 중 월급 200만원 미만 저임금 근로자는 22.8%(1775명)였다. 월급이 200만원 안 되는 남성 육아 휴직자는 약 20%에 불과했다. 육아휴직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서 책임은 “저 같은 외벌이 가족의 경우 한 달 100만원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라며 “롯데그룹의 경우 첫 달은 통상 임금 100%가 보전이 되기 때문에 육아 휴직을 썼지만, 그 다음 달은 월급이 부담되어서 휴직을 길게 하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