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성, 꽃 진 자리
한 송이 꽃잎에도
내홍이 없었으랴
그 다툼, 시샘들은
지천으로 풀어 놓고
아 진정
꽃들이 아름다운 것은
낙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 기다림
숲은 옥상에 세들어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집
긴 계단을 걸어
문을 열 때도
닫을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숲은 세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면
길다란 가지들이
백 갈래의 가지를 뻗고
천 갈래의 뿌리를 내립니다
숲은 숨 죽이고
세들어 있습니다만
잎사귀들이 자꾸만 달싹이고 반짝입니다
잎들이 나는 연습을 합니다
숲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꽉 붙들고 있습니다
잎사귀들은 벌써
나는 연습을 마쳤습니다
빛나는 사과를 따듯
당신이 허공에서 잎을 따낼 때까지
잎사귀들은 배회하고 다닐 것입니다
외로운 섬이 갈매기를 띄우듯이
이젠 잎을 날려야 하나 봅니다
함민복, 누구나 별이 될 수 있다
달리는 기차로 별 떼를 옮겨 보았니
잘했다
열리지 않는 앞에서 별을 울었어
잘했다
별 볼 시간도 없이 숨 사이 숨 사이 살았지
잘했다
사라져 가는 별에 눈감아 어둠 바쳐 보았는감
잘했다
자 이제 너는
죽어
별의 더 빛나는 몸뚱이
어둠이 될 수 있을 거야
조은, 그의 별
그는 산을 올랐다
뜨거운 눈물 항아리를
혹처럼 지고 갔다
그는 자주 멈춰 하늘을 봤고
바늘처럼 그림자를 찔러 대는
빛살도 응시했다
산에서는 그가 사는 도시가
한 송이 가시연꽃처럼 보였다
모퉁이를 돌 때 그의
두 눈이 역광 속에서 빛났다
같이 가던 사람이 눈물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감격이야!” 했다
그는 그 하루에
바라보던 별에
성큼 다가갔다
마경덕, 슬픔을 버리다
나는 중독자였다
끊을 수 있으면 끊어봐라, 사랑이 큰소리쳤다
네 이름에 걸려 번번이 넘어졌다
공인된 마약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문 앞을 서성이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나오면
목덜미로 빗물이 흘렀다
전봇대를 껴안고 소리치면
빗소리가 나를 지워버렸다
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너를 만지다가
아득한 슬픔에 털썩,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밤새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데도 닿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너에게 감염된 그때, 스무 살이었고
한 묶음의 편지를 찢었고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