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과 판례는 시대정신을 담습니다. 획일적으로 법을 적용하기보다 올바른 법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잘못된 법을 시정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법률 전문가 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52·사법연수원 30기)은 뉴스1과 만나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 받았던 백종건 변호사의 변호사 재등록에 적격 판단을 내린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서울변회는 지난 9월5일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해 실형을 선고받아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백종건 변호사(33·사법연수원 40기)의 재등록 신청에 대해 적격 의견을 내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달했다.
이 회장은 '병역거부'라는 매우 민감한 주제에 대해 오랜 고민과 법리적인 분석을 한 듯 거침없이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그는 "여러 인권 관련 변론을 맡고 있는 백 변호사의 경우 본인의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고 해서 활동 가능성에 족쇄를 채워선 안 된다"고 밝혔다.
변호사 활동이 가능할지 여부를 '도덕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때, 백 변호사의 범죄사실은 뇌물수수, 성범죄등의 범죄와 다르게 봐야한다는 취지다.
같은 차원에서 서울변회는 현직에서 문제를 일으킨 변호사는 등록을 받아주지 않지만 고위 법관 출신 '전관'의 변호사 등록 신청에도 적격 의견을 냈다.
이 회장은 법을 지켜야하는 변호사 단체가 실정법을 어긴 사람을 받아줘서는 안 된다는 법조계 일각의 지적에 "원칙에 따르되 필요하다면 법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검토하고 논의를 해봐야 한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내놨다.
변호사법 5조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회장은 해당 법이 범죄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5년 등록 거부기간을 만들어 사실상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행복 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개정에 나설 뜻을 밝혔다. 서울변회는 최종적으로 법무부가 백 변호사의 변호사 등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법률적 조치를 취할지 검토 중이다.
이 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인 접근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병역거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홍보할 게 아니라 대체복무라는 대안을 마련해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민주주의 성숙 과정에서 개인의 양심을 보장하는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 역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면서 사회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제도를 국가가 만들어줘야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대체복무제는 더 엄격하고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이 2015년 6건, 2016년 7건에서 2017년 8월 현재 26건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수용할 정도로 성숙했으며 소수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로 인해 국방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회장은 시행 1주년을 맞은 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가 높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변호사 업계에서도 각자 음식값을 내는 문화가 정착하는 등 청렴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해당 제도로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경우에 대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법무사·세무사·공인중개사·변리사 등 유사직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따라서 "변리사회에서 변리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들로 이뤄진 특허변호사회 회장을 제명한 것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옳다"며 "변호사 숫자가 부족할 때 보완재 역할을 한 유사직역은 국가가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