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량, 사랑
사랑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로 흐르는 강물이었을까
소리없이 소문을 쌓고
그리움의 가시 하나 심장에 꽂고
시간 속에 아파하는 우리들의 노래
빈 허공에 바람처럼 흐르는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흘러 흘러서 영혼 속에
하늘 하나 그려놓고
땅 하나 내려놓고
빛 하나 뿌려놓고
생명 하나 키워놓은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우리들 그리움의 바퀴였을까
허영숙, 목련꽃
바람의 한숨에도
주저 없이 낙하하는 단단하지 못한 사랑
봉오리 안에
그립다는 말 아직 남아 있을 때
너 있는 북쪽하늘로 소식 보내니
봄 나무들 사이에
제일 먼저 연모의 꽃말이
하얗게 피어나거든
이별을 목전에 두고 보내는
마지막 고백이라 여겨다오
그리하여 꽃 져 내린 자리마다
다시 푸른 잎이 돋아나면
너와의 사랑은
짧아서 슬프기만 한
생애 가장 눈물겨운 봄이었노라고
미처 보내지 못한 결구로 읽어 다오
박정만, 산 아래 앉아
메아리도 살지 않는 산 아래 앉아
그리운 이름 하나 불러봅니다
먼 산이 물소리에 녹을 때까지
입속말로 입속말로 불러 봅니다
내 귀가 산보다 더 깊어집니다
남상진, 연필을 깎으며
편안하게 그것을 잡아봐
오른손으로 가볍게 칼을 대고
검지를 축으로 엄지를 밀며
왕복 운동을 하는 거야
세심하게 조금씩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는
좋은 향기와 고운 살결을
덤으로 전해주는 즐거움
너도 깎아봐
마지막엔 칼자국도 없애고
매끈하게 뒷정리도 하고
잘려나간 흔적은 남기지 말아야지
처음엔 겁도 나고 쉽지 않지만
숙달되고 깨달으면
의도대로 보기 좋게 깎여지는 그것처럼
우리네 삶도 숙달되고 깨달으면
좋은 향기와 고운 결을 만들며
매끈하게 의도대로 살아지겠지
서주홍, 저쯤 하늘을 열면
저쯤 하늘을 열면 내 고향 있것지
식전부터 만선한 깃발이 파도같이 나부끼고
선창가 갯바람을 씻어 내리면 어기여차
고기 푸는 뱃사람들 신바람 나것지
귀 설지 않은 어판장 중매인들 소리와
소금집에 선구점 주인까지
희희낙락 휘파람 소리
생선 바구니 가득 머리에 이고 아낙네들
콧노래 흥겹게 걸음새 거뜬도 하것지
출렁출렁 너울대는 바다 저 멀리
내 어릴 적 수평선 바라보면서
꿈 꾸던 그 하늘 아래 조무래기들
시방도 더러는 있을 거다
저쯤은 하늘을 열면 그래
내 꿈 조금은 남아 있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