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친구야.
맞아, 나도 처음에 왔을 땐 생각보다 좀 다르다 했었어.
근데 이게 진짜야. 지옥은 사무직이야.
지옥으로 치자면 나쁘지는 않아 그치?
화염구덩이에 비하면 거의 꿈의 직장이나 다름 없잖아.
물론 풍수지리에 따른 배치라느니 세련된 색상, 유기농 쥬스 따위가 마련된 근사한 사무실은 아니지만.
일하는 동안 그나마 사적인 접근을 막아 줄 책상 칸막이도 없어.
그렇다고 해서 뻥 뚫린 공간만 있는 사무실은 절대 아냐.
형광등 아래로 줄지어 이어진 철체 책상이 있지.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너의 직장동료야.
이따금 기침이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보통은 조용해.
왜냐?
우리는 생각을 하는 중이라서 그래.
책상 위에 놓인 종이에 뭐라고 적을지 아주 열심히 생각 중이야.
너도 하나 받았지? 맨 위에 빨간줄이 있고 그 밑으로 파란색 줄이 열 개가 그려진 색인카드.
여기서는 컴퓨터로 일하지 않아. 그냥 색인카드만 가지고 하면 돼.
그거 진짜 중요한 카드야. 매일 하루에 새로 하나씩 받게 될거야.
만약에 카드에 무언가를 적으면 저녁부터 자유야. 진짜 죽이지 않냐?
지옥에서 하루를 보내면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느낌이랑 비슷할거야. 근데 밤이 되면 완전 딴 판이지.
귓속에 불개미가 가득 차거나, 깨진 유리 위에서 맨 발로 춤을 춰야 해.
눈은 꼬챙이에 찔리고, 혀는 짤리고, 오장육부가 뒤틀려.
여기까지는 그나마 쉬운 밤이고. 보통은 훨씬 더 심해.
그래서 색인 카드가 그렇게나 중요한거야.
악마가 벌을 줄 때는 그렇게나 창의적일 수가 없다는 거 알고 있었어?
가장 기발한 고문법을 생각해내는 한사람만이 저녁에 쉴 수 있다고 얘기해줬거든.
인간의 발상과는 비교도 안된다니까.
어 야. 벌써 끝날 시간이다. 마감 시간 5시가 되기 전에 의견함에 우리 카드를 넣어햐 해.
행운을 빈다. 너한테 행운이 간다고 나한테 불행이 오진 않겠지?
엇 잠깐만.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모든 사람들에게 쉬운 고문법을 적으라고 말하려고 마음을 먹은 모양이네?
꿈도 꾸지마라. 무슨 짓을 해도 언제나 당첨자가 나오니까.
게다가 한명 이상일 때도 있어. 자기만 쏙 빠지고 남들 다 엿멕이는 멍청하고 이기적인 놈이 꼭 있다니깐.
내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거야.
아니면 사무실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거나.
그래도 나라면 걱정은 안하겠어. 내일이 되면 너도 바로 적응할테니까.
*7734를 거꾸로 보면 HELL로 보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