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려고 밤늦게 PC방에 갔던 학원강사 김모(28)씨는 우연히 카운터에 놓인 PC방 관리 컴퓨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PC방 컴퓨터 사용자의 화면이 관리자 모니터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던 것. 그 동안 PC방을 많이 이용했던 김씨는 자신이 열어본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은 은행 계좌번호, 전화번호 등을 다른 사람이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쾌해졌다.
PC방 관리프로그램에는 고객 컴퓨터의 화면을 순간적으로 캡처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며, 원격접속 메뉴를 사용할 경우 실시간으로 똑같이 볼 수도 있어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 등의 가능성이 크다. 이용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없는 데다 고객은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원격제어를 받거나 화면이 공유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기능 자체를 모르는 이용자가 많고, 이 기능이 악용될 경우에 대비한 제도적 규제가 마련돼 있지 않아 관리 프로그램 사용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7일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에 따르면 이 기능은 PC방 사업 초창기에 불법 음란물 사용을 감시·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일반 회사에서 사용하는 원격제어가 가능한 네트워크 관리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하지만 PC방에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 설치가 의무화(2001년 12월 시행)됐는데도 아직까지 화면 공유를 통해 사용자의 화면을 엿볼 수 있는 기능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 과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PC방을 이용하는 이재구(25·성균관대 경영3)씨는 “회사에서 사원들의 컴퓨터 사용을 감시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지만 PC방에서도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몰랐다”며 “PC방에서 개인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사생활이 여과 없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니냐”며 당혹스러워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PC방 업주는 “고객이 몰래 유료게임을 하는지, 불법 동영상을 이용하는지 등을 체크하기 위해 가끔씩 사용자의 화면을 확인하기는 하는데, 손님들이 싫어하고 사생활 침해 여지도 있고 해서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PC방 업주는 “과도한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이 발생할 경우 불법 동영상 자료를 이용하고 있는지, 업로드가 있을 경우 시디키를 빼내가려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한번씩 볼 뿐 거의 쓰지 않는 기능”이라며 “나도 사용을 자제할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은 절대 못 보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PC방 관리프로그램인 넷커맨더를 개발,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니오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PC방 관리의 편의성을 중점에 두고 유해 사이트 모니터링과 유지·보수 차원에서 원격제어 기능을 프로그램에 넣었지만, 그 역기능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려해 보지 못했다”며 “내부 논의를 통해 기능 폐쇄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터넷PC협회 조영철 정책국장은 “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가 따로 없어 악의적으로 개인정보를 빼내려고 한다면 현재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 메신저나 이메일을 이용할 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 전달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며 사용자의 주의를 당부했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게임산업과 관계자는 “PC방 관리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자세히 검토해 본 적이 없지만, 그런 기능이 있다면 사생활 침해 등의 소지가 있는지 법률 자문을 받아보겠다”고 말했다.
우상규 기자
[email protected]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계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