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 내려
더 이상 갈 수 없어 내렸습니다.
종점이 가까운데 저당 잡혀온 내일은 바닥 났고
생각은 호주머니 속에서 잠잡니다.
날 저물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적막강산에
맨몸으로 뛰어든 눈발만 한없이 반가와 지쳐 때묻은 뼈를 묻을까 잠시 비장한 궁리만 합니다만,
끝없는 우리의 희망 같은 것일까요?
눈 덮인 산하 어둠의 한 끝을 녹이며 달려가는 붉은 눈시울의 차창은,
어디서 우리는 거짓없이 절망할 수 있을는지.
며칠 이곳에 묵으며 피차 이름 석자 건지지 않아도 낯익은 슬픔 어깨 기대어 나누어 떨 요량입니다.
남은 희망에서 춥고 흐린 날을 제한 따스한 백일몽을 셈하며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에서 또 다시 처음인듯 해후할 날을 재촉하겠습니다.
별빛인지,
아직은 확실치 않은 얼굴들 새벽 첫차 바람 부는 플랫폼에 떠오르는군요,
저들에게 아름답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서랍을 열어주십시오.
소용닿지 않을 유품과 깊고 긴 유서에 부끄러움 전합니다.
삶과 죽음을 우롱한 죄 값은 살아가면서 차차 갚아드리겠지만 다시 만날 땐 거짓 우롱에 함구하겠습니다.
그곳에도 해가 떴겠지요.
밤이 다하면 아침이 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낯선 곳에서 눈물로 수긍해야 하다니.
지나쳐온 눈물보다 겪어야 할 즐거움이 더 많다고 속삭여대는 저 눈발에 새로운 은유를 찍으며,
아! 속는 셈치고 기꺼이 속아 넘어 가겠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에 기대 앞세우고 마중 나와 주시길 바라면서,
또 소식 드리지요.
강남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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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다가 힘들때마다 들여다보는 시 한편입니다.
힘이 됩니다.
절망은 종점이 아닙니다. 지나갈, 그리고 이겨낼 시련 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