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유예와 관련하여 현직 교사로서 섬뜩합니다
국정교과서 도입이 1년 늦춰진다는 걸로 각종 포털 게시판이나, 기사 댓글에는 '결국 이럴 줄 알았다' 또는 'ㅋㅋㅋㅋ' 같은 뉘앙스가 대세인데 교사로서 느껴지는 무서운 점은 ‘당장 내년 신학기에는 국정교과서 사용을 희망하는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한다’라는 점입니다.
일선 현장에서는 연구학교 지정에 목을 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평교사는 업무량 증대로 인해 기피하지만 가산점을 받아 승진을 준비해야 하는 교내 중추라인은 이를 선정 받고자 혈안이 되려 할 겁니다. 특히, 연구학교 지정 주체가 교육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지금, 더욱 그리하겠지요.
교사들이 사익 추구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하는 댓글이 달릴 것 같은데 사실 연구학교 지정은 학부모들이 쌍수 들고 환영합니다. 학생부 종합전형 하에서 연구학교 또는 시범학교 지정으로 자녀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어마어마하거든요. (사실 혜택이 크다기보다 ‘없으면 손해 본다’가 맞는 듯합니다)
실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홍보에서도 연구학교 지정유무와 잔여기간에 따라 신입생 입시결과가 크게 달라지고 학교 본교무실로는 '왜 우리 학교는 연구학교 신청을 안 하느냐? 옆 학교에 비해 너무 불리하지 않느냐?'란 항의 전화도 자주 옵니다.
저 역시 30대 중반이 되다보니, 승진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고 '절대 선'의 기준이 개인의 영리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알기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걱정됩니다.
결국 내년은 다같이 시도 교육감을 중심으로 도입거부를 외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개별 학교를 컨택하여 연구학교 선정을 유도하면 1. 학교는 연구학교 예산을 받아낼 수 있고, 2. 교사는 일한만큼 승진가산점을 얻을 수 있으며, 3. 학생은 연구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남다른 교내활동의 기회를 더 얻게되어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유리함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4.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교사들이 승진에 유리한 환경을 '잠시' 조성할 수 있고, 뜻에 맞는 관리자들을 배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이것만은 아니라 4번은 비약이긴 합니다.)
간단히 생각하기로는 ‘학부모들이 국정교과서 도입을 그냥 앉아서 지켜만 볼까?’ 하시겠지만 자녀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더 큰 메리트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학부모들도 둘로 양분되어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 겁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자신과 자녀의 영리 앞에선 뭐든 가능한 게 사람인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도입을 하게 되어 교과서를 유출시키면 되는 겁니다. 그럼 3년 후 수능을 치를 때부터 주된 내용을 국정교과서 위주로 출제되게 될 거고 나머지는 그들의 의도대로 되는 거지요. 연구학교 지정도 불허하게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