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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허락된 과식
게시물ID : lovestory_825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5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16 19:10:26

사진 출처 : https://lesstired.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B9lxHZE8vRs





1.jpg

문인수빗소리는 길다

 

 

 

저 긴 빗소리 창을 열고 들어오지 못한다

저 슬피 어둠 속에서 떠돌고 있는 것들이

기억하노니 내 청춘 아닌 것들 없으나

더는 젖지 않겠다

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힘껏 누워 있다

이 긴 빗소리 밤새도록 다 풀려 나간다






2.jpg

황학주여기를 사랑이라고 하나

 

 

 

갸름하게 빠져 나가는 밤 버스

가슴을 오므라뜨려서 경적소리를 내고

네게 간다

전염처럼 빠른 사랑이었다

살이 빠지는 한숨이 있고

물든 즐거움을 저버려야 하는

악몽조차 눈독을 들이던 사랑

아직도 네게 길들지 않는 두드러기 빨갛지만

이 모래 들판에서

목 빠지게 못 잊었던 기다림의 궁지

쭉쭉 팔처럼 젖히며 가고 싶었던 사랑

이렇게 가슴 상한 여기를 마음이라고 하나

여기를 사랑이라고 하나

네게 화상같이 벌건 오장을 보일 수가 없다






3.png

박해옥쑥부쟁이

 

 

 

저녁놀 비끼는 가을언덕에

새하얜 앞치마 정갈히 차려입은 꼬맹이 새댁

살포시 웃음 띤듯하지만

꽃빛을 보면 알아

울음을 깨물고 있는 게야

 

두 귀를 둥글게 열어 들어보니

내 고향 억양이네

정성스레 냄새를 맡아보니

무명적삼서 배어나던 울엄니 땀내

울먹대는 사연을 들어보니

무망중에 떠나온 길이 마지막이었다는

 

고향집 언저리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쑥부쟁이야 쑥부쟁이야

층층시하 시집살이가 고달픈 거니

오매불망 친정붙이들 그리운 거니

 

옮겨 앉은 자리가 정 안 붙고 추운 것은

돌아갈 옛집을 갈 수 없기 때문이야






4.jpg

나희덕허락된 과식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햇빛이 가득한 건

근래 보기 드문 일

 

오랜 허기를 채우려고

맨발 몇이

봄날 오후 산자락에 누워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햇빛을

연초록 잎들이 그렇게 하듯이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댔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






5.png

김춘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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