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yourdailyvintage4.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MZUfmoJngRU
이진수, 꽃은 소리없이 핀다
저 빗방울 소리
사이, 텅 빈 것들이
모여 꽃이 되는 거다
침묵은 가벼이 소란 떨지 않는다
손창기, 화문(花紋)들
국화빵 가게는 겨울에도 꽃이 핀다
비닐 하우스엔 폐타이어 몇 개 동여 놓고
이슬방울이 송이송이 맺혀 있다
아내와 교대를 하는 남편이
먼저 피어난 반만큼의 화로에서
활짝 핀 꽃들 손가락으로 말해 주었다
모든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저 손가락들
덜 핀 꽃들 온기 뒤집어 주라고
꽃잎 스칠 땐 고개만 끄덕끄덕 거렸다
말 못하는 목젖 아래에도
꽃문양이 새겨질 수 있다는 걸
하얀 봉지 안에 수북이 담아온 국화빵
그 향기로 뜨끈하게 전해온다
조금 전 마이너스 통장 금액 연장으로
아내와 난 마음 하나 맞추지 못하고
실랑이질 벌이다가 문득
사내가 디디고 간 자리마다 꽃무늬 보도블럭이
마구 구워져 나오는 걸 보며 한겨울
땅속에도 분명히 연탄불이 있을 것이라고
함께 고개 끄덕였다
강민숙, 못
못 하나 뽑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를
못을 뽑아본 사람은 안다
장도리와 망치 불끈 들고
못의 목을
겨누어 뽑아본 사람은
못의 흔적
그 휑한 자리를 안다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못의 자리
사람이 못이었음을 안다
언제가 한번은 뽑히고 말
그 자리에
나는 오늘
내 삶의 외투를 건다
장옥관, 걷는다는 것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 다닐 대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다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천종숙, 바뀐 신발
잠시 벗어둔 신발을 신는 순간부터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분명 내 신발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길이 덜커덕거렸다
닳아있는 신발 뒤축에서
타인의 길이 읽혔다
똑같은 길을 놓고 누가
내 길을 신고 가버린 것이다
늘 직선으로 오가던 길에서
궤도를 이탈해 보지 않은 내 신발과
휘어진 비탈길이거나 빗물 고인 질펀한 길도
거침없이 걸었을 타인의 신발은
기울기부터 달랐다
삶의 질곡에 따라
길의 가파름과 평탄함이
신발의 각도를 달리 했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은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길
나는 간신히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