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게시물ID : lovestory_824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7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6/09 18:48:31

사진 출처 : http://grunge4ever4you.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id5a_CleefU





1.png

최승호고비의 고비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

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고비에는 해골이 많다

그것은 방황하던 업덩어리들의 잔해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2.jpg

나기철당나귀

 

 

 

나날이 귀가 자란다

귀가 자랄수록 거리에서 들었던

자음들은 모음들을 만나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와 내 몸 속에서 떠돈다

시끄러운 소리들 때문에

풍경조차 모자를 눌러쓴다

귓속에 든 소리들이 쥐를 낳는다

쥐는 지푸라기를 모으고

지푸라기는 길을 낸다

커지는 귀를 움켜쥐려

모자를 눌러쓰다보면

넓은 대로도 귀 안에 갇힌다

쥐똥과 지푸라기들로 난장판이 된

귀에서 낯선 세상은 자꾸 태어나고

수다는 길게 이어진다







3.jpg

길상호껍질의 본능

 

 

 

사과 껍질을배의 껍질을 벗기면서

그들 삶의 나사를 풀어놓는 중이라고

나는 기계적인 생각을 돌린 적 있다

속과 겉의 경계를 예리한 칼로 갈라

껍질과 알맹이를 나누려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몇 점씩 달라붙던 과일의 살점들

한참 후 쟁반 위 벗겨놓은 껍질을 보니

불어있는 살점을 중심에 두고

돌돌 자신을 말아가고 있다 알맹이였던

그녀의 빈 자리 끌어안고 잠든 사내처럼

버려지고도 제 본능을 감당하고 있다

이미 씨앗은 제 속을 떠났지만

과일 빛깔은 살갗에 선명하게 남았다고

그 빛깔 향기로 다 날릴 때까지

안간힘 다하고 있는 껍질들

너무 쉽게 변색되어 갈라지던 마음을

저 껍질로 멍석말이해 놓고

흠씬 두드려 패고 나면 다시 싱싱해질까

말려진 껍질 속에 드러눕고 싶었다






4.jpg

김충규우체국 계단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편지 혹은 엽서를 안 쓰고 지낸 지

몇 해가 지났다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써 기억의 밭에 파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길 건너편의 가구점 앞에서

낡은 가구를 부수고 있는 가구점 직원들,

그리움도 세월이 흐르면 저 가구처럼 낡아져

일순간 부숴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낡은 가구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정 그리워서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면

내 이마에 우표를 붙이고 배달을 보내리라

우체국의 셔터가 내려가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갔다 여름의 끝이었고

나는 아직 무성한 그리움의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5.jpg

조은몸을 굽힐수록

 

 

 

상처 속에는 미련의 씨방이 있다

외면하면 씨앗이 요람까지 튄다

 

세상을 부싯돌처럼 치고 다니던 몸에

어둠의 더께가 앉는다

 

반환점은 없다

 

몸을 굽힐수록

피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등에 얹힌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