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darling-with-no-probs.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euVrKjRHk1s
임윤식, 나뭇잎이 모르고 있는 것
몇 개 남은 나뭇잎, 나뭇가지 잡고
떠나지 않으려고 바스락 소리만 낸다
그러나 젖 떼려는 어미는 냉혹하다
나뭇가지들 회초리 휘둘러
그 소리마저 툭 잘라버린다
이별은 미움까지도 바싹 말라야
떠날 때를 아는 법이다
그러나 나뭇잎 떠나보낸 나뭇가지는 안다
어미의 마음에 남은 슬픔은
뜨거운 화인(火印)이 되어
해마다 둥근 불도장 하나씩 찍고 사는 것을
반칠환, 냇물이 얼지 않는 이유
겨울 양재천에 왜가리 한 마리
긴 외다리 담그고 서 있다
냇물이 다 얼면 왜가리 다리도
겨우내 갈대처럼 붙잡힐 것이다
어서 떠나라고 냇물이
말미를 주는 것이다
왜가리는 냇물이 다 얼지 말라고
밤새 외다리 담그고 서 있는 것이다
도종환,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허영숙, 종려나무가 있는 집
흙담이 있는 집 앞마당의 종려나무 한 그루
길 밖을 내려다본다
귀가를 서두르는 하루를 잡아끌다
갈라진 잎들이
가끔씩 바람의 옆구리를 찌른다
온기로 밥알이 익는 창문 밑으로
점점 더 깊게 뜸이 드는 저녁
종려나무집 마루에는
새벽에 잠시 앉았다간 퍼런 안개의 흔적과
총총 꽂히기 시작하는 저녁별과
패를 뜨는 노인의 노랫가락만 있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문안을 하지 않아 길어진 야윈 목이
종려나무보다 더 길어서 슬프다
오늘은 손님이 올 거라는데
날마다 틀리는 패를 거머쥐고 그리움을 맞추는 시간
생의 저녁은 왜 쓸쓸함 쪽으로만 더 깊이 길을 내는가
고은, 비닐봉지
쪽 파 두단 담아온
검정 비닐 봉지
빈 비닐 봉지
바람에 날아 올라
저 혼자 귀머거리 춤을 추더라
어쩌다가
울 넘어 흐지부지 가버리더라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