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yourdailyvintage4.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8uqtgBEV4Hk
임보, 완전한 부부
남편은 장님이고
아내는 앉은뱅이
그들은 따로 따로 살 수 없지만
부부가 되어 잘 살아간다
남편은 아내의 발이고
아내는 남편의 눈이다
남편의 등에 업힌 아내가 앞을 보고
아내를 업은 남편이 길을 간다
아내를 밭에 갖다놓으면 김을 매고
아내를 시장에 데려가면 장을 본다
두 불구가 만나 하나로 완성된
동심일체 완전 부부
온전한 사람들은
다 결손 부부들이다
곽문연, 어머니의 텃밭
무씨를 뿌려놓은 텃밭
무순이 빽빽하게 솟아나오면
어머니는 새순을 솎아 밭고랑으로 던지셨다
못난 놈만 뽑혀나가는 거여
빈자리가 많아야 무가 실한 법이여
지금껏
이랑과 이랑을 무사히 건너왔다
어머니는 질척한 밭고랑을 흙발로 업어서 건네주셨다
솎아낸 무는
살아남은 놈의 밑거름인 거여
사철 푸른 어머니의 텃밭
단단한 무
쑥쑥, 회초리처럼 자랐다
이윤경, 고행(苦行)
찻잔이면서
뜨거운 차 한번 담지 못하고
그 잔을 받쳐주는 그릇으로
뜨거운 차가 쏟아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다가
잔에 금이 가지 않을까 조바심하다가
잔이 깨지는 날
같이 떠나길 바라며
사는 것은
희생이 아닌
고행(苦行)이여라
조성국, 등
경사 급한 내리막 산길에
허리 쫑그리고 버티어 서선
균형 못 가누고 미끄러지는 어린 자식의
손목을 잡아주던
묵은 손때 반질반질한 노송 한 그루
굽은 어매의 조붓한 잔등 붙들고
이 세상을 입때껏 윤나게 살았다
함동선, 들꽃
내가 지키지 못한 들꽃
나비 날아올 수 있게 높이 산을 쌓다가
어느날 나비 알아볼 수 없는 고향이 되어
순간순간을 산 일기는
내가 떠난 예성강물을 푸느라
손이 부르텄다
너는 내가 처음 만난 곳
다리가 아파 가지 못하는데
나비 모르는 들꽃 꺾지 말라
꺾어도 버리지 말라
그리움으로 야윈 나는 더 야윌지라도
봄은 기다리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