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youhavetostartsomewher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2KtwHBpiO_8
이성목, 짝사랑
높고 긴 담장 아래서
유리 조각 박힌 어깨를 넘보네
그대 사는 집
담장을 기어 넘으며
넝쿨 장미처럼 붉게 가슴 베어도 좋았을
내 스무 살의 짙은 그림자
둘둘 말아 거두어 가려 할 때
오래 앓던 그대 하얀 얼굴로 밖을 보네
내가 차마 넘볼 수 없는
그대 사는 집
문 굳게 잠겨 있어도 알 수 있네
담장의 유리 조각
칼보다 더 깊게 눈길에 박혀도
볼 수 있네. 그대
손가락 깨물어 담벼락에 흩뿌린 말들
내 눈에 그렁그렁 고여 들어
이렇게 맑은 눈물
멈추지 않네
이외수, 6월
바람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문수현,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바위와 숲이 있기 때문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초목들이 바람과 어울려
새소리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산과 숲이 아름다운 것은
머리 위엔 하늘
발밑엔 바다
계절이 드나드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해와 달과 별들이 들러리 선
그 사이에 그리운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나누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재, 이명
애드벌룬에서 지하도 바닥에 붙은 양말 광고까지
이 거리는 소리친다 두 눈과 귀를 닫아도
거리는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다
저 인구 시계로부터 어제의 교통사고 숫자까지
텔레비젼은 물론 자명종까지
이 도시는 늘 외치거나 재잘대고 있다
저것들을 멀리하는 그때가 죽음이다
최문자, 유언
위암 말기라고 했다
새카맣게 탄 말을
잘도 삼키더니
묻는 말에
대답 한 마디 못하고
혓바닥에서 푹 꺼진다
손목을 잡아주었다
가물가물한 체온이
이미 진흙을 덧바르고 있다
찌르르 말이 흐른다
불 붙다 쓰러진 말
연기에 그슬린 문장
억지로 말문을 닫을 때마다
시게를 보며 시각을 읽었으리라
아무 것도 모르는 숫자를 읽으며
삼켜버린 말들
그때
누군가가 가슴을 내밀고
받아적었어야 했다
손목에 차고있던 그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