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형, 스며들다
울음송곳으로 누가 자꾸
어둠을 뚫고 있나
한낮 산책길 저수지
수면에 어른대는 당신을
잠깐 들여다보았을 뿐인데
밤새 환청에 시달린다
물이 운다는 생각
난생 처음 해 본다
그것도 동물성의
울음꽃떨기를 피워
깊이 모를 바닥에서 송이째
끝없이 밀어 올리는 듯하다
저수지 안에서 살아가는
황소개구리가 내는 소리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도
누구의 설움이 조금씩 누수되어
내게로까지 스며들었는지
그때 물이 울었다는 생각
거두어지지 않는다
오규원, 나무속에서 자본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속에서 자본다
안상학, 이불을 널며
우리들의 삶이
이불 한 장만한 햇살도 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햇살에 말린 이불을 덮으면서 알았다
이내 눅눅해지는 우리들의 삶
더러 심장도 꺼내 햇살에 말리고 싶은 날이 있다
심장만한 햇살 가슴에 들이고
나날을 다림질하며 살고 싶은 날이 있다
천양희, 견디다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백년에 단 한 번 꽃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과
물 속에서 천일을 견디다 스물 다섯 번 허물 벗고
성충이 된 뒤 하루 만에 죽는 하루살이와
울지 않는 흰띠거품벌레에게
나는 말하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이근배, 잔
풀이 되었으면 싶었다
한 해에 한번 쯤이라도 가슴에
꽃을 달고 싶었다
새가 되었으면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목청껏 울고 싶었다
눈부신 빛깔로 터져 오르지는 못하면서
바람과 모래의 긴 목마름을 살고
저마다 성대는 없으면서
온 몸을 가시 찔리운 채 밤을 지새웠다
무엇하러 금세기에 태어나서 빈 잔만 들고 있는가
노래를 잃은 시대의 노래를 위하여 모여서 서성대는가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것일 뿐
가슴에 남은 슬픔의 뿌리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