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 강물 위의 독서
비가 오면
강물은
제 하고 싶은 말을
점자로
밀어 올린다
오늘은
물속이 흐리다고
물고기들 눈빛도 커튼을 친 양 흔들리고 있다고
오늘은
땅과 물의 경계가 없어졌으니
강물에서 죽은 이들이 발도 없이 걸어나갔다고
뉘 집에선지 전 부치는 냄새가 발을 달고 건너온다고
출출하다고
이유경, 늪을 보고 있으면
늪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진다
물은 왜 저기 모이기만 하면 더러워져
먼저 보낸 시간까지
냄새 나게 만드는지
갇힌 물이 왜 세상의 앙금을 털어다가
진흙더미 속으로 투신하려는지
늪은 또 저렇게 엎질러져있으면서
대책 없는 밤과 폭풍
드높은 곳으로 지나가게 놓아두고
제 구덩이나 파듯
왜 아래로 아래로만 졸아들려고 하는지
김선우, 돌에게는 귀가 많아
귀가 하나 둘 넷 여덟
나는 심지어 백 개도 넘는 귀를 가진 돌도 보았네
귀가 많은데 손이 없다는 게 허물될 것 없지만
길 위에서 귀 가릴 손이 없으면 어쩌나
나도 손을 버리고 손 없는 돌을 혀로 만지네
이 돌은 짜고 이 돌은 시네
달고 맵고 쓴 돌 칼칼한 돌 우는 돌
단 듯한데 실은 짜거나
쓴 듯한데 실은 시거나
혀끝을 골고루 대어보아야
돌이 자기 손을 어떻게 자기 몸속에 넣었는지
알 수 있네 무미무취라니!
무취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귀가 많으니 돌이야말로 맛의 궁전이지
당신이 가슴속에서 꺼내 보여준
막 쪼갠 수박처럼 핏물 흥건한 돌덩이
맵고 짜고 쓴데 귀 가릴 손이 없으니
내 입술로 귀를 덮네
입술 온통 붉은 물이 들어
어떻게 자기 귀를 몸속에 가두는지 보라 하네
오규원, 나무
우뚝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언덕 위에 서 있다
허공을 파고 있는
그 나무 꼭대기에서는 새가 한 마리
가끔 몸을 기우뚱하며
붉은 해를 보고 있다
날개가 달린 그 나무의 가지
정현종,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