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규, 풀벌레 소리
이 밤 저 이름없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나를 어데까지 데리고 갈 셈인가
마당을 채우고 골목마다 가득가득 넘쳐나는
어둠은 목덜미를 꺾어서 덮쳐누르고 있는데
잘 드는 칼로 마구 살점들을 도려내어 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통곡
어떨 때는 칼을 갈라 하고
어떨 때는 칼을 버리라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는 어둠속
칼을 가진 자도 칼을 빼앗긴 자도 마침내는
풀섶에 누워 호젓이 젖는다
저녁에 부는 바람과 아침에 피어날 꽃
이 덧없음을 사람들은 믿으려 들지 않는다
서러운 강물로 흐르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어디까지 가는지를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배미순, 내 속의 바람
사람은 누구나
한 가닥 바람을 갖고 산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세한 바람소리에 떠밀려
오늘도 이 하늘 저 하늘
떠다니며 사는 나는
누가 쥐고 있는 풍선인가
남진우, 달이 나를 기다린다
어느 날 나는
달이 밤하늘에 뚫린 작은 벌레구멍이라고 생각했다
그 구멍으로
몸 잃은 영혼들이 빛을 보고 몰려드는 날벌레처럼 날아가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달이 둥그러지는 동안
영혼은 쉽게 지상을 떠나지만
보름에서 그믐까지 벌레구멍은
점차 닫혀진다 비좁은 그 틈을 지나
광막한 저 세상으로 날아간 영혼은
무엇을 보게 될까
깊은 밤 귀 기울이면
사각사각
달벌레들이 밤하늘의 구멍을 갉아 먹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선, 하늘에 갇힌 새
하필
눈동자 속으로 날아 든
하늘
황금볕을 쪼다가
눈이 시려서
되돌아 갈 길을 잃은
새
바람 속으로 꼴리는 구름
구름 속으로 파닥이다가
소실점이 되는
새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때문에 하늘에 갇힌
새
지운경, 결실
나는 나무입니다
내가 열매를 맺는 것은
결실이 아닙니다
나를 기다리는 세상으로
뛰어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변신입니다
이 딱딱한 몸을 그대로 드릴 수 없어서
내 모든 부드러움과
사랑과 연민을 둥글둥글 뭉쳐서
나를 몽마르게 기다리는 어디에서나
쪼개지고 뭉개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