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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녹음기
게시물ID : wedlock_82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레요레요
추천 : 57
조회수 : 4020회
댓글수 : 29개
등록시간 : 2017/05/13 14: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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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이 매우 바빠져서 밤늦게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주말에도 출근을 하다보니, 딸아이와 함께하는 독서나 놀이시간은 거의 누릴 수 없었다.
잠든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조심히 나와 아내가 차려주는 야식에 맥주 한 잔을 하며
위안을 얻기는 했지만, 아이와 함께 할 수 없어 마음이 너무 아린다고 이야기했다.

며칠 뒤, 늦은 퇴근을 하고 씻으려는데 아내가 샤워하면서 들으라며 신기한 것을 들고 들어왔다.
방수가 되는 스피커라는데 틀어놓고 샤워를 시작하니 너무나 사랑하는 딸아이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 나는 너의 목소리가 참 듣고싶었구나...

아이는 조잘조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 엄마와 마트에 갔다가 스타벅스에 들른 이야기
저녁 메뉴와 숙제와 여타 자잘한 하루의 이야기들을 쉼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녹음기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방에 들어와 녹음을 하며 엄마 흉도 몰래 보면서
아이는 아빠가 늦는 건 슬프지만, 이렇게 둘만의 비밀 시간을 갖는 게 너무 신기하고 좋다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가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자리를 사진으로 보여줬다고 했다.
저기에 하루종일 앉아서 일을 하고 계신다고.
자기는 뛰어놀 시간이 있는데 아빠가 밤늦게까지 앉아서 일하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아주 고맙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에게
'그리워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야, 그 마음이 자라서 사랑이 되는거야' 라며
아빠도 00이를 그리워하면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사랑하고 있어- 라며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다같이 캠핑을 가자고 말했다한다.

샤워를 하는 동안 너무 즐겁고, 그립고, 눈물이 났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먹고 싶었던 잔치국수를 예쁘게 내어놓고 아내는 또 웃는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너무 울컥해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의 모든 일에 소홀하고 또 세상의 모든 피곤을 끌어안은 듯 찡그리며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털어놓는 동안

아내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따뜻한 아침을 만들어주고, 고맙다며 양말도 신겨주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도 하고, 우리 아버지와 장모님과 형님 내외도 챙기고
딸아이와 데이트도 하고, 또 밤늦게 들어오는 나를 위해 늦은 밤에도 맛있는 야식을 늘 챙겨주고...

내가 잔 뒤에는 내 옷을 갈무리하고 다음날 입을 옷을 걸어놓겠지.

그럼에도 늘 웃고 고맙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난 늘 덕없는 남편이다.
늦은 밤, 아내가 야식 먹은 것을 치우는 동안 방으로 들어와 나 역시 녹음기에 주절주절 딸아이와 나누고픈 이야기를 담는다.

회사이야기, 야식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프로젝트가 끝나면 나도 아이와 함께 커피숍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
엄마는 청소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엄마와 무슨 음료수를 먹었는지 물어도 본다.

아이는 이 녹음한 것을 언제 들을까, 또 뭐라고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진다.

사는게, 뭐 별 게 있는가.
또 뭐 별 게 있어야하나. 난 아내가 있어 오늘 하루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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