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발밑에서 몇번 뒹굴다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려니 자꾸 와서 발을 깨무네요. 놀아달라는 거지요. 고양이는 무척 독립적이고 알아서 잘 노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동물 같아요. 옆에서 지켜보면 그렇습니다. 자기 귀찮게 하는 건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관심 끄고 있는 건 더 싫어하는 것 같달까요. 지금도 다시 와서 발밑에서 뒹굴. 손을 뻗어 몇 번 만져주다가 다시 자판으로 손을 옮기니 부비적거리다가 또 발을 살짝 깨물고 갑니다. 좀 놀아 달란 말이야. 어제 부모님 댁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올 때, 호야는 처음엔 뒷유리창 바로 앞으로 올라가 앉아 겁이 나는 듯 야옹야옹 울었지만,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한참 달리자 앞좌석으로 넘어와선 제 무릎 위에 누웠습니다. 우리집은 졸지에 '고양이가 있는 풍경'이 됐습니다. 오랜만에. 한참 힘이 넘치고 이성에도 관심보이기 시작할 나이가 된 호야는 또래 수코양이들이 그렇듯 호기심 많고 싫증도 빨리 내고 오랫동안 안겨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뭔가 궁금한 게 생기면 얼른 가서 들여다봐야 하고 문이 빼꼼 열리기라도 하면 튀어나갈 자세를 취하지요. 얼굴 가득 담긴 그 궁금증이 그대로 내보여집니다. 집에 와서 사고 몇 개 쳤습니다. 차고 안의 팬트리(마른 음식이나 캔음식물을 담아 놓는 수납장)로 뛰어올라가 렌틸콩이 담겨 있던 비닐봉지를 찢어 놓아 콩이 다 쏟아지게 만들어 놓았고, 호박씨 말려 놓은 것을 올려놓은 선반을 뒤집어 놓았고... 기타 등등. 그런데 손이 가지만 그래도 예쁜 걸 어떡하냐구요. 부모님과의 여행을 앞두고 호야를 아이들이 보기로 하고 우리집으로 모셔온 둘째 날, 집안엔 활기가 감돕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집안을 뛰어다니고, 그러다가 어디 올라가서 앉고, 그릇 떨어뜨리고 하는 것이 우리에겐 익숙치 않은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보고 있기만 해도 너무 좋습니다. 커피 원두가 똑 떨어져서 그냥 물 끓여 인스턴트 커피 넣어 휘휘 몇번 휘저은 후에 홀짝거리며 고양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이게 평화구나 싶습니다. 참 얼마만에 이런 모습을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던가 싶습니다. 아내는 일 가고 아이들은 학교 간 후의 집에서 고양이와 단 둘이 음악 들으며 커피 마시며 갖는 일상이 마치 꿈같습니다. 여기 정치도 아니고 고국의 정치가 정상적인 방향으로 순항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도, 나의 일상은 그 질감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여기에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 봄이 기어이 봄 같군요. 아내가 쓴 글 하나를 소개... 정확히 말하자면 자랑 좀 합니다. 오늘은 참 마음이 푸근하네요. 아마 아내도 이 특별한 성모 성월을 맞아 기뻐서 쓴 글이겠지요. 저는 나이롱 신자지만, 내 옆지기 크리스티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입니다. 아내도 참 예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요. 그녀의 글을 읽고 느꼈습니다. 올해 5월의 광주는 좀 다르겠구나. 대통령이 직접 내려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세상이 조금 더 상식적으로 돌아가겠구나. 시애틀에서... ------------------------ 언제나 오월이 오면 따뜻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꽃들이 비를 맞아 축 늘어진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아, 오월은 성모님이 축복해주시는 따뜻한 날들이 많았었는데, 올해는 왜 이렇게 춥고 비도 많이 올까.
성모님, 마음 속으로 물어봅니다. 올해는 왜 하느님이 우리에게 따뜻한 날씨를 주시지 않으시는 거지요? 기도하다가 여쭤봅니다. 내 손에서 한 마디 한 마디 묵주가 지나갈 때마다 저는 성모님께 여쭤봤습니다.
아가야. 내 예쁜 크리야.
그렇게 늦게까지 자기 할 숙제 다 했다고 게임 밤늦게까지 하다가 잔 아이들, 그리고 하루종일 걷고 운동까지 하고 와서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글을 쓰다가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버린 남편이 덮은 이불들을 챙겨주고 나서 어두운 거실에 켠 촛불의 일렁이는 불빛은 성모님의 모습을 비추입니다. 그 촛불 속에서 성모님이 제게 말해 주십니다.
5월은 너희들이 나를 특별히 더 사랑해주어 기쁜 달이지만, 참 많은 슬픔들도 있었잖니.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에서 죽어갈 때 나는 울었단다. 정말 수많은 나의 귀한 아이들이 목숨을 잃어갈 때 나는 슬펐어. 그리고 나서 벌써 37년이 흘렀구나.
이제 내가 사랑하는 동방의 작은 나라엔 새로운 희망의 싹이 텄구나. 이 비는 나의 기쁨의 눈물이란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더 행복을 나누며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희망을 보고 있는 기쁜 눈물이지. 너희도 기도해주렴, 나의 아이 문재인 디모테오가 내가 사랑하는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줄 수 있도록. 아가야, 너도 그동안 기도 많이 했구나. 너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