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하, 꽃
때로
네 목소리 속에서
거대한 파도가 내 가슴에 달려오는 것을 느끼지
울부짖다 무지갯빛으로 타는 소리를 듣지
때로
네 눈동자 속에서
타는 노을이 내 영혼에 파묻히는 것을 보지
하늘과 땅을 몽땅 물들이는 슬프디 슬픈 빛깔을 느끼지
때로
네 머리칼 속에서
짙푸른 하늘이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지
온통 별이 부서지며 내려앉는 모습도 보이지
때로
네가 떠나가는 모습에서
흔들리는 우주가 내게 안기는 것을 느끼지
꽃이 피었다 지고 다시 피우는 신비도 보이지
나는 지금 이렇게 너를 보고 있어
박순분, 길손
발길 뜸한 찻집
찾아든 길손
소나기 쏟아지듯
장작난로 위에 주전자 물 끓어대고
오랜 지인처럼 나무의자에 마주앉아
허물 없이 주고받는 넋두리가
국화차 향에 실려 빈 맘 채워 주고 있다
낯선 친절에 허허로움 삭일 즈음
창에 비친 노을이 그의 등을 떼밀어
떠날 차비 서둘게 하고
지는 해 묶어 놓고 잡고 싶은 마음 애써 감추는
마담의 애처로운 눈빛이 울먹이고 있다
혹여 이 길 다시 지나거든
잊지 말고 들러 주길 기약하며
배낭에 인연을 얹어 주고
그녀는 손을 흔든다
길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가람, 삶이란
별이 되지 못해
꿈 속에서
별을 찾아 헤매지만
삶이란
별이 되기 위해
심신을 태우는 것
하늘도 돌고
지구도 돌지만
윤회는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위안
내세 또한
현세의 열망을
희망으로 바꿔 놓은 바람(願)이다
삶은 고행의 차원을 넘어
내세와 천국과도 바꿀 수 없는
이승에서 누리는 피안
설사
천국과 극락을 믿더라도
그곳에 가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삶이란
그렇게 소중한 행복이다
유동균, 그리운 강
그리운 강아
내가 바람으로 불어
네게로 가면
내 곁에 나무들도
네게로 가는구나
가다가, 가다가 하늘 보면
그리운 맘 담아 가고
가다가, 가다가 별을 보면
외로움도 담아 가마
그리운 강아
네가 바람으로 불어
내게로 오면
네 곁의 갈대들도
내게로 오는구나
오다가, 오다가 나무를 보면
벚나무도 데려오고
오다가, 오다가 풀을 보면
흰 토끼풀도 데려오렴
류시정, 서리꽃 인생
안녕 하며 출근하던 아빠의 죽음
음식상에 둘러앉은 문상객의 시선에
세상의 죽음은 예고 없이 오는 것이라고
그저 그렇게 남 얘기로 흘리고
교복 차림의 소녀들
음식상에 둘러앉아 화장지만 축낸다
하얀 생일 케이크마냥
휴지통에 쌓아 놓은 죽음의 흔적
톡 따내는 음료수 캔 소리에
이승과 저승이 갈리고
삶은 그렇게 병뚜껑 소리처럼 순간이라고
생생한 꽃잎에 서리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