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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한국 피로증
게시물ID : sisa_8206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킬라칸
추천 : 0
조회수 : 137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12/19 19: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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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는 최근 미국에 성공적인 방문을 했다. CSIS의 Brad Glosserman과 Scott Snyder가 얘기했듯, 이 방문은 모두가 기대하던 대로 성공적이었다. 아베는 미의회 연설을 한 최초의 일본 수상이고, 오바마와 좋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베의 정책 연설에 대한 별 놀랍지도 않고 거의 연례행사 수준인 남한과 중국의 비판은 오바마 행정부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2015년 초, 미국 웬디 셔먼 차관은 공적으로 한국의 역사 페티쉬즘이 "매우 불만스럽고,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가져온다"라고 비난했다. 한국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뜨웠지만, Karl FriedhoffAlastair Gale이 분석해냈듯이 한국인들은 이미 전세계적 이미지 싸움에서 일본에게 서서히 패배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얘기하는 "한국 피로증"-남한의 가차없는 2차대전 관련 이슈 공격, 특히 일본에게 요구하는 지속적인 사과-는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변모하기를 원하는 미국에까지 번지고 있다. 셔먼과 수많은 서방 분석가들이 지적했듯이 미국에게 있어 아시아에서의 진짜 문제는 중국이다. 그리고 미국은 공개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들지는 않지만 과거와는 달리 중국이 "평화롭게" 부상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지고 있다. 


가면 갈 수록 관계는 베이징의 남중국해 팽창 이후 경쟁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 강력한 미일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일본은 인도를 제외하자면 중국에게 유일하게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아시아 국가다. 일본은 중국 힘의 팽창에 대한 특별한 요새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3번째로 큰 GDP를 가지고 있고 미국의 안보구조의 핵심 축(lynchpin)이다. Pivot to Asia, 미국의 남한 방어, 대만을 도와줄 모든 개입과 다른 아시아 국가의 개입은 전부 다 일본의 "중간기착지"를 거쳐가야한다. 아베는 일본의 중요성을 의회에서 강조했고, 오바마-아베 담화, 그리고 새로운 미일 국방백서는 이를 모두 다 보여준다. Friedhoff는 이에 대해 날카로운 논평을 보여줬다:

아베는 연설 말미에 남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그가 남한을 직접적으로 공개거론한 적은 없는데, 그는 남한이 미일동맹이라는 핵심기둥에 추가적 파트너라 얘기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남한이 서울에서 보는 3각동맹이 아닌 하급이라 강조한 것이다.

놀랍지 않게도 이는 한국에다 속쓰림을 가져다줬다. 중간권력으로서 한국 엘리트들은 미국과 일본, 중국이 한국 없이 서로 회의를 할 때 불쾌해한다. 셔먼의 발언에 대한 한국의 과장스러울 정도의 반응은 서울이 이웃에 의해 왜소화되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여당인 새누리당은 즉시 반발했다: "미국이 전쟁 범죄의 피해자들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면, 전세계의 경찰으로서의 위치 역시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역사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의 댓가는 미국의 헤게모니보다 더 클 것이라니! 물론 당연히 아니다. 대신 이 반발은 미국이 역사문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서울의 두려움을 나타내준다.

아베의 방미 이후 나온 한겨레의 칼럼은 이를 인정하고 한국인들이 그 때까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제안했다: 한국은 2차대전의 렌즈로 일본을 보려는 관계를 청산해야된다는 것.

박근혜 행정부마저 이를 깨달은 것 같다. 일본이 획일적인 사과문을 하나 작성해 일본 내 모든 이들이 그 사과문을 영원히 떠받혀야된다는 소리는 언제나 허황된 희망이었다. 간단하게 개방적인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한국이 일본이 역사를 받아들이는 방식-야스쿠니 신사 박물관과 아베의 연대-등등에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허황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을 외부에서 마구 비난하는 것은 전혀 회개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일본의 내부청산은 일본이 스스로 해야되는 것이다.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면 인권에 대한 중국의 반응처럼 당연히 민족주의적 반발만 이끌어낸다. 

하지만 남한은 국가적 정체성을 지나치게 "일본은 경쟁자이자 적이다"라는 개념 하에 형성했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것은 어렵다. 빅터 차는 이미 남한이 "반일주의"의 "부정적 국가주의"를 교육시키며,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미 일본의 90년대 대규모 사과 (무라야마, 고노 담화)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논증한 바 있다.

그러나 반일주의는 이제 남한에서 정치적 올바름으로 떠받들여진다: 정치인들은 이를 감히 어길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해"를 "동해"로 다시 표기해야된다는 필요 없을 정도로 도발적인 캠페인으로 대표되는 일본을 상대로 한 맥시멀리즘은 너무나도 흔하고 귀에 거슬리기 때문에 일본의 엘리트들은 그들을 증오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구성하는 국가에 양보를 하는 것은 치욕으로 여기게 된다.

국제관계학 이론의 단어를 사용하자면, 반일주의는 남한의 "존재론적 안정"이다. 이 반일주의는 남한의 정체성 형성에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포기하기는 매우 힘들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앞서 얘기한 한겨레의 칼럼이 매우 드문 것이다. 하지만 그 칼럼에서조차 우리는 "주적" 이미지를 관찰할 수 있다: 아베의 방미는 한국과 전혀 상관 없는 매우 전통적인 외교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날라온 냉혹한 펀치"라고 설명되기 때문이다.

미일 회담은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남한에게 매우 필요한 두 민주주의 국가가 가진 정상회담임에도 불구하고 "충격"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남한 외교관들이 아베-오바마의 정상회담을 막지 못한 것은 그들이 무능력하고 비겁해서라고 주장된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아베-오바마 정상회담의 책임을 지고 외교부 장관이 물러나야된다는 소리까지 떠돌았다.

이 일본이 떠오르면 우리는 반드시 진다는 제로섬 정신은 한국인들의 뇌 속에 깊이 박혀있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왜 이 현상이 발생하는 지에 대해 논증한 적이 있었다. 줄여말하자면 난 한국의 분단이 이 극심하고 거의 광신 수준인 반일주의를 설명한다고 본다. 북한과 남한은 직접적이고 영원한 정통성 경쟁에 놓여있다. 북한은 옛날부터 인종주의이자 국가주의적이고 거의 파시스트 수준의 국가였다. 

그리고 한국 인종 (the minjok)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막는 것은 북한의 존재이유고, 북한은 남한이 미제의 식민지이자 국가의 유산과 인종적 순수도를 외국인들에게 매각하고 있다고 자주 비난한다.

남한은 이런 시대착오적 국가주의적 자격론을 반박할 수 없다: 지나치게 국제화되었고 미국화되었고, 주한미군까지 주둔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남한의 부패하고, 엘리트적이며, 재벌이 지배하는 민주주의는 북한의 민족 페티쉬즘을 방어할 만한 내부적 정통성을 충분히 만들 수 없다.

이러니 일본이 여기서 아주 쓸모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국가주의자들 대신 북한의 "채찍을 맞아주는 사람"이고, 경쟁자보다 더 "minjok"스럽게 행동할 수 없는 남한에게 "존재론적 안정"을 안겨주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들은 일본에 대해 보통 언론적 객관성을 포기한 채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떠들기를 좋아한다. 수출시장에서 반드시 이겨야되는 경쟁상대, 미국의 관심의 라이벌, 사죄하지 않는 제국주의자, 한류를 받아들이는 국가 (대부분의 일본 주부들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주장하는 한국 애널리스트를 찾는 것은 매우 쉽다.), 아시아를 다시 굴복시키려하는 군국주의 국가 등등으로 일본을 평하는 것은 매우 찾기 쉽다.

리앙쿠르 암초에 대한 한일 영토 분쟁은 이를 잘 나타낸다. 한국의 한 주류 신문은 실제로 사무라이가 독도 (암초의 한국명)을 침공할 것이라 주장했다. 정부는 서방 신문에 광고를 내고 한국의 팝스타들을 외교관으로 삼아 한국의 주장을 전세계적으로 펼쳤다. 한국군은 독도 주변에서 훈련을 한다. 

올림픽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나오는 정치적 스턴트들은 일본이 한국과 친선경기를 펼치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한국 정부는 전세계적으로 일본해를 "동해"로 다시 명명해야된다라는 (이렇게 하면 암초에 대한 한국의 주장이 강화된다는 믿음 하에) 캠페인을 펼치고 있으며, 심지어는 싸이에게 강남스타일을 독도스타일로 개사하라는 압박을 가할까라는 고려까지 했었다.

한국 내 외국인 학생들은 "외국인들이 이 소리를 하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이런 캠페인에 자주 동원된다. 난 독도를 칠한 전철에 탑승해본 적도 있었고, 한국 UN가입 20주년 다큐멘터리가 UN에 가입한 목적은 독도와 2차대전에 대해 일본에게 압력을 가해기 위해서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광복절에서 한국 어린이들은 물총을 들고 일본 군인들을 장난으로 살해하며 (응 정말로!) 난 1590년대에 발생한 임진왜란을 한국을 점령하기 위한 일본의 수천년간의 야욕의 일종이며 1910년 병합으로 이루어졌다라고 주장하는 음향쇼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 역사연구에서 일본이 한국을 수십번, 심지어는 수백번 침략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골손님이며 (물론 대부분은 왜구 약탈), 일본은 한국이라는 "다리"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받았다는 소리 역시 흔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어이없는(ridiculous) 예시는 한 토크쇼 게스트가 빨강색과 하양색이 혼합한 줄무늬 셔츠 (욱일기를 아주 희미하게 닮은 셔츠)를 입고 나온 것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빅터 차가 정의한 이 "반일주의"는 미국에까지 번져 미국 내 한인들의 로비로 인해 위안부 기념비와 미국 교과서까지 바뀌고 있다.

이런 예시들에 대해 계속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내 포인트는 사회과학적 관찰로 일본에 대한 한국의 집착은 단순히 70년 전에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그래서라는 것 외의 설명이 필요해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역사적 우려들이 사기극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우려 자체는 진정하니까.)

이런 반일감정의 광신성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일본과의 갈등이 정체성의 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차씨가 얘기했듯, 남한의 국가주의는 네거티브하며, 반북한 대신 반일주의를 이용해 정의된다. 이 이유는 아마 북한이 한반도의 국가주의 논쟁을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에 서독이 동독을 상대로 방어해냈던 것과는 달리 남한은 북한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남한은 제3자를 이용해 남한의 국가주의적 진실성을 정의해야되고 이로 인해 북한과의 정통성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된다. 북한은 옛날부터 인종주의이자 국가주의적이고 거의 파시스트 수준의 국가였다. 그리고 한국 인종 (the minjok)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막는 것은 북한의 존재이유고, 북한은 남한이 미제의 식민지이자 국가의 유산과 인종적 순수도를 외국인들에게 매각하고 있다고 자주 비난한다.

물론 남한의 정체성이 민주주의적이고 인종주의 이후에 기초하고 있다면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minjok은 남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남한 교육은 이를 가르치고 (이로 인한 인종주의는 엄청난 문제다.), 정부의 미디어 캠페인과 공익광고는 minjok을 강조한다. 내 학생들은 이에 대해 자랑스럽게 쓰며, 한국의 국민의례는 몇 년 전까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minjok에 경례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이 민족주의를 충분히 대체할 만큼 경쟁성이 없다. 부패, 반자유주의, 그리고 엘리트적인 정치기회 구조는 아주 활발한 길거리 데모문화를 만들었고, 이는 한국에서는 선거가 정통성을 담아주지 못하는 장치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남한이 민주주의로 스스로 정당화를 하지 못하고 민족주의는 반대로 엄청나게 강력하면, 서울은 minjok이라는 프레임 하에 평양과 반만년 역사를 놓고 경쟁해야된다. 이는 남한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북한이 역사왜곡을 해서가 아니라 남한의 서구화된 문화, 엄청난 미국의 영향력, 다문화주의로 인한 혼혈로 인해서다. 북한의 더 순도높은 minjok 국가주의는 항상 남한에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인종을 정통성으로 내세운 독재자 박정희는 거의 한 세대를 통치했고, 한국인의 10%는 대놓고 친북을 표방하는 정당에 19대 총선에서 표를 던졌으며, 민주당은 남한에게 있어 북한보다 미국이 더 위협인지라는 질문에 대해 계속해서 얼버무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은 남한에게 있어 북한이 차지하고 있어야하는 위치인 "다름" 대신 선택됬다. 모든 한국인들은 남북좌우 할 것 없이 식민지 지배가 나빴다고 동의한다. 일본을 비판하는 도덕성은 전혀 도전받지 않지만, 반면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앞서 얘기한 "누가 더 minjok스럽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시달린다. 

서독은 동독을 상대로 스스로 정의를 하고 정통성 경쟁에서 이겼다. 하지만 북한은 맑시즘을 포기한 채 남한에서조차 공감받는 정통성의 언어(minjok)을 내세웠고, 남한의 민주주의는 이를 이겨낼만큼 강하지 않다. 이러니 일본을 때리는 것이 훌륭한 솔루션인 것이다. 이는 남한이 minjok의 수호자라고 내세울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장기적으로 남한의 정치적 정통성을 인종에서 민주주의로 변화시켜야한다는 논쟁, 실제로 변화시키려면 오늘날 엘리트들을 몰아내 한국 정치를 완전히 청소해야되지만,을 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봤을 때 반일주의는 남한 내 많은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효과적인 해답이고, 미국이 계속해서 있다고 가정할 때, 이런 일을 벌임으로서 지정학적 댓가를 치를 필요도 없다.

남한 입장에서 이를 거부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남한이 반북한이 될 수 없다면, 반일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기사
출처:한국피로증


생각할 게 많은 듯 하네요.
출처 http://quidproquo.egloos.com/5298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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