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상, 달맞이꽃
잊지 못한다
버릴 수도 없다
그래서 삶은 흔들리는 기다림
그믐날 밤
강둑에 달맞이꽃 피어 있다
길고 눈먼 눅눅한 안개 속
한사코 저 혼자
달맞이꽃 피어 있다
시들면 안 돼
잠이들면 안 돼
끈끈한 어둠 몰고 해거름 밀려오면
그대는 착한 만조의 바다
그러나
수평선 그리움 건너 달님은 오지 않고
달맞이꽃 홀로 피어
그리움을 앓고 있다
전인숙, 아가
새벽 산 속에서 만나는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 맺힌 싱그러운 꽃잎
방글대는 배꽃 같은 아가
새순 돋아나듯
찬란한 내일을 숨쉬는 사랑의 열매
심연 속에서
한아름 행복한 웃음꽃 핀다
깊은 산 속 옹달샘 같은
맑고 싱그러운 옹알이
집 안 가득 행복한 웃음
가족 사랑 뿌리내리게 하는 아가
예종숙, 무제
꽃들의 외침을 들어 본 적 있는가
귓속에서 가슴 속에서 영혼 속에서
저리 소리치는 물결 위를
끝없이 바라본 적 있는가
칼날 선 바람에 추락할 듯 걸린
이 척박의 산맥 끝에 매달린
이방같이 눈선 지역까지도
태양은 시든 잔디풀도 남김없이
살아야 할 훗날까지 피어나게 하고
마른 강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바람이나 냇물도 충분히 보내는데
어둠 속에도 화안히 꽃내는 풍기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선의를 품고 있다
최희준, 블랙홀
하늘이 내린 대롱을 타고 누이가 갔다
누이와 숨결을 나누던 방 안 공기
회오리처럼 검은 눈동자 속으로 빨려 간다
사진첩 안에서 밝게 웃던 매형
좇아 들어가고
손떼 묻은 장신구들이 들썩인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반대편 출구
그곳 세상도
질퍽했던 이 세상만큼이나 정겨울까?
향불을 피우고
긴 팔 그림자가 느긋이 천장을 넘어가는 춤발
신명나는 촛불 위로
두 세상이 엇갈린다
나영자, 새벽 강
하루의 낮과 밤을 섬으로 떠 있었다
하얗게 누워 있는 남이섬의 새벽 강
새벽 강은 하늘이 내려앉은
허공의 자락 같은 빈 마음이어라
초가을 짧은 별에 몸을 보태어
가을행 열차를 탄 단풍 같은 친구들
건너온 세월의 언덕을 넘는다
돌아오지 않을 서러운 꽃잎 날리면서
이토록 맑은 날 신의 축복이 있을 줄이야
물안개 젖은 눈시울 위로
어딘가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을
그의 숨결이 바람을 몰고 온다
밀고 당기고 엇갈리며 살아온
희망들이
그리움으로 줄줄이 남아
내 안을 몹시도 타게 하는 새벽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