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장인정신
네이버캐스트 - 승정정원일기
[일기]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사실은 이런 방대한 분량에 담긴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는 측면이다. 역시 수치로 먼저 접근해 보면, 예컨대 조선 후기의 중요한 현상인 ‘격쟁(擊錚: 징을 쳐서 민원을 호소하는 행위)’은 [정조실록]에 52건이 나오지만 같은 왕대의 [일기]에는 무려 27배가 많은 1,404건이 검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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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풍부한 정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은 ‘만인소(萬人疏)’와 관련된 기사일 것이다. 말 그대로 ‘만인소’는 1만 명이 연명으로 상소한 문건이다. [일기] 정조 16년 윤4월 27일에는 경상도 유생인 유학(幼學) 이우(李瑀)ㆍ이여간(李汝榦) 등 1만 여 명이 대간을 역임한 유성한(柳星漢, 1750~1794)의 상소에 사도세자를 비판한 내용이 있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같은 날 [정조실록]에서는 그 사건과 관련해 “경상도 유생 이우 등 1만 57명이 상소했다(慶尙道幼學李㙖等一萬五十七人上疏)”고 전제한 뒤 상소의 본문만을 실었다. 그러나 [일기]에서는 놀랍게도 그 1만 57명의 이름을 모두 기록한 것이다. 90여 장에 걸쳐 그 수많은 이름을 빼곡히 열거한 그 자료는 철저한 기록 정신의 한 극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