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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41.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게시물ID : history_162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5
조회수 : 84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11 01:39:37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 팟캐스트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진승이 봉기한 이래 무수한 영웅들이 일어났던 한초쟁패시기가 일단락이 되었다.

항우와 유방의 대회전으로 귀착되는 시기에 천하는 매우 어지러웠지만 결국 고조가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가 되었다.

고조의 공신들중 모반을 일으킨자는 주멸되고 공이 높은 충신들은 각기 장상이 되어 부귀를 누렸다.

그후에 여후가 천하를 농단하여 유씨의 천하를 여씨의 천하로 바꾸려 했지만

한제국의 대신들이 힘을 합해 제려를 주멸하고 다시 유씨를 황제로 옹립하여 드디어 천하가 안정 되었다.

 

 

한제국이 흥기한지 약 2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라가 안정 되었다.

고조의 성무함으로 일어난 나라지만 그 성무함으로만 나라를 다스릴수는 없는것이 천지간의 이치였다.

고조와 효혜.여후의 시대에 어지러운 국가를 안정시키고 효문제와 효경.효무제까지의 태평시대를 열었던

재상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장승상 열전에 나온다.

 

나라가 어느정도 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통치의 원칙은 정해지지 않았다.

장창은 주계관이 되어 도량형을 정비하고 음률과 역법의 질서를 세웠다.

지금부터 승상 장창과 함께 그 외 여러 재상들의 이야기를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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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지기불가 기기불봉조.(期期知其不可.期期不奉詔.)

 

장승상 창(張蒼)은 양무 사람이다.

그는 책과 음률과 역법을 무척 좋아했다.

진나라때는 어사가 되어 조정의 기둥밑에 앉아 군주의 언행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그후 장창은 죄를 짓고 도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패공이 봉기하여 각지를 공략하다가 양무땅에 들어왔을때 장창은 패공의 빈객이 되어 남양을 공격하는데

가담했다.

그러다가 장창이 다시 죄를 지어 참수형에 처해지게 됐다.

장창이 옷을 벗고 형틀에 엎드렸는데 그의 신체가 매우 장대하면서도 피부가 박속같이 희었다.

왕릉이 보고는 "참으로 기이한 사내다" 라고 생각하여 패공에게 말해 살려주었다.

장창은 이때부터 패공의 사람이 되었다.

 

패공이 한왕이되어 한중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와 삼진을 평정했다.

그즈음에 진여가 상산왕 장이를 공격하여 장이가 한왕에게 귀순했다.

이때 장창이 회음후 한신을 도와 조나라를 공격하고 진여를 생포했다.

그후 장창은 조왕이 된 장이의 재상으로 임명되어 장이를 보필했고

장이가 죽자 그 아들 장오의 재상이 되었다.

연왕 장도가 모반했을때 고조가 친정하자 장창이 종군하여 공이 있었다.

한 6년 장창은 북평의 식읍 1천2백호를 받고 북평후가 되었다.

 

소하가 상국의 자리에 앉게된 후 

장창은 천하의 도서와 나라의 재정 및 호적에 대해 통달했고 또한 산학과 율력에 능통했으므로

그로 하여금 열후의 신분으로 승상부에 근무하면서 나라의 재정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들을

관장하도록 했다.

 

경포가 모반한후 멸망하자 한에서는 황자 유장을 회남왕에 봉하고 장창을 그 재상으로 삼았다.

그후 14년이 지나서야 장창은 한으로 들어가 어사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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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周昌)은 패 사람이다.

그의 종형이 주가이다.

주창은 진나라때 사수군의 하급 서기였다.

패공이 봉기하여 사수를 격파하자 주창.주가는 군의 하급관리로 유방을 따랐다.

패공은 주창을 치지로 삼고 주가를 빈객으로 삼았다.

그뒤 패공이 무관으로 들어가 진을 격파하고 한왕이 되자 주가는 어사대부가 되었고

주창은 중위가 되었다.

 

한왕4년

초군이 형양에서 한왕을 포위하자 사태가 매우 위급하였다.

한왕은 형양을 탈출 하면서 주가에게 형양을 굳게 지킬것을 명했다.

그러나 주가는 형양을 지킬 힘도 군사도 없었기때문에 곧 함락되고 말았다.

항우가 주가의 사람됨을 보고 초의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주가는 오히려 항우를 꾸짖었다.

"네놈이야말로 속히 한왕에게 달려가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곧 한왕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될것이다."

이 말에 크게 노한 항우는 그를 끓는물에 삶아 죽였다.

한왕이 이 소식을 듣자 크게 슬퍼하고 그의 아우 주창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주창은 항상 한왕을 따라다니며 항우를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왕 6년

주창은 소하.조참 등과 함께 봉을 받아 분음후 가 되고

주가의 아들 주성은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아버지의 덕으로 고경후에 봉해졌다.

 

주창은 그의 형 주가처럼 기개가 높았다.

장수로서 힘이 매우 세었고 누구에게나 직언을 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 소하나 조참등도 주창의 앞에서는 그를 어려워 했다.

 

한번은 고조가 한가할때 주창이 상주할것이 있어서 입궁했다.

그런데 그때 고조는 총희인 척희를 껴안고 희롱하며 놀고 있었다.

그걸 본 주창은 헛기침을 하고는 돌아서서 나왔다.

멋적게 된 고조가 뒤쫓아 달려나와서는 주창의 목덜미에 올라타고 말했다.

"내가 어떤 군주냐?"

덩치큰 고조를 목에 매달고 몇걸음 가다가 화가난 주창이 말했다.

"폐하는 걸주와 같은 개새끼다."

 

고조가 주창의 등에서 내려와 웃고 그를 용서했다.

 

고조가 웃을수밖에 없었던것은 주창이 심한 말더듬이 였기 때문이었다.

주창은 평소에도 말을 더듬었지만 특히 황제의 앞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할때는

특히 심하게 말을 더듬었기때문에

그가 아무리 강경한 발언을 해도 고조는 웃음이 터져나와서 화를 낼수가 없었다.

 

고조가 태자를 폐하고 척희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하자 대신들이 완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대신들도 고조의 뜻을 꺾을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조도 결국 유후 장량의 계책으로 태자를 바꾸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고조는 조정 대신들 중에서 주창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그를 불러서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그러나 주창은 원래 화가 나면 말을 더듬는데다 황제의 명을 받자 더욱 화가 나서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아..아..아니되옵니다.

소..소..신은 마..마..말주변이 없지만 그래도 그..그..것은 옳지 아..않사옵니다.

폐..폐..하께서 태..자를 폐하시려 해도

소..소..신은 기..기..필코 그 며..명..을 바..바..받들수 어..없사옵니다."

 

고조는 엄숙히 물었는데 주창이 대답하는것을 보니 웃지 않을수가 없었다.

결국 고조는 태자를 폐하는것을 중지하게 되었다.

 

여황후가 정전의 옆방에 숨어 그 대화를 옅듣고 있다가 주창이 나오는것을 기다려 그에게 말했다.

"만일 장군이 힘을 다하여 간하지 않았다면  태자가 폐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주창이 황후에게 말했다.

"그..그렇지만 그..그..것은 화..황후를 위하여 폐..폐..하께 가..간..한것은 아..아니었습니다."

 

어쨌건 이런일로 고조는 척희의 아들을 태자로 삼을생각을 완전히 포기했다.

고조는 척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척부인을 포기시켰다.

 

"태자에게 이미 우익이 생겨 버렸으니 더이상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이제부터 여후가 그대의 참 주인이니 그렇게 알고 여후를 잘 모시어라."

 

척부인이 슬피 울었지만 고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다.

고조는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조 왕으로 삼았다.

 

이당시 조요 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 매우 영특했다.

그는 부새어사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조나라 사람 방여공이 주창에게 조요를 추천했다.

그러나 주창은 조요를 가벼히 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도필의 어린아이가 무엇을 안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요가 고조를 바로 옆에서 모시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당시에 고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이유는 어린 조왕의 장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조왕 여의의 나이는 열살 이었다.

영리한 조요가 고조의 속 마음을 알아채고 고조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걱정하고 계시는 이유는 조왕이 나이가 어리고 척부인과 여후께서는 서로 사이가 벌어져

만세 후에 혹시나 조왕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까 걱정하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속마음을 들킨듯 깜짝 놀란 고조가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네가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폐하께서 아무리 걱정 하셔도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짐의 걱정도 바로 그것이다."

"조왕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강직한 사람을 조나라의 상국으로 임명 하십시오.

그 사람은 또한 여후와 태자나 군신들이 평소에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대 말이 옳도다.

그러나 조당의 군신 중에 누가 그와 같은 중차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어사대부 주창은 성격이 강직하고 더욱이 여후와 태자 뿐만 아니라

조당의 군신들 모두가 경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아니면 아무도 그와 같은 중대한 일을 감당해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네 말이 맞도다."

 

고조는 조요의 말을 듣고는 뛸듯이 기뻐 하였다.

고조가 어느날 주창을 가만히 불러 말했다.

"내가 부탁할것이 있소.

조왕 여의에게로 가서 재상이 되어 주시오."

주창이 울면서 말했다.

"신은 오래전부터 몸을 일으켜 폐하를 따랐습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중도에서 유독 소신만을 버려 제후왕에게 보내려고 하십니까?"

"이 일이 공을 어지럽히는 일이며 또한 좌천에 해당하는 일임을 짐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조왕에 대한 나의 말 못할 걱정은 공이 아니면 아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요.

공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 말을 따라주기 바라오."

주창이 눈물을 흘리며 고조에게 대답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붕어하신 후에 저는 죽습니다."

고조가 눈물로 호소하는데는 주창도 어쩔수가 없었다.

주창은 조나라로 떠나갔다.

 

주창이 떠나고 한참후에

어사대부의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고조가 대신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새 어사대부로 누가 좋겠소?"

그러나 대신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고조는 옆에서 시립하고 있는 조요를 유심히 바라보는듯 하더니 말했다.

"역시 조요가 좋겠군."

고조는 조요를 어사대부로 임명했다.

조요는 이미 진희를 칠때 나름의 공이 있었으므로 강읍후에 봉해져서 식읍을 받고

열후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얼마후 고조가 붕어했다.

여후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조왕을 죽이기 위해 그를 소환했다.

그러나 조나라의 상국 주창은 조왕이 병이 들었다고하면서 그 명을 받들지 않았다.

여후의 사자가 세번이나 왕복했지만 주창은 결코 조왕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노한 여태후가 조왕 대신 주창을 장안으로 소환했다.

이윽고 장안에 당도한 주창이 여태후를 알현했다. 여태후가 주창을 보고 화를 내며 꾸짖었다. 
"그대가 무어길래 조왕을 싸고 도는가?

그대는 척비에게 맺힌 나의 원한을 잘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조왕을 올려 보내지 않았소?"

"그러하기 때문에 더욱 명을 받들수가 없었습니다."

 

여후는 주창을 경도에 붙들어 놓고 다시 사자를 보내어 조왕을 소환 했다.

마침내 조왕이 장안에 당도하자 한달쯤 지나서 조왕에게 독을 먹여 죽였다.

이일로 인해 장창은 병들고 그로부터 3년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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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5년후에 여태후는 고조가 살아있을떄 조왕을 위해 계책을 낸것이 어사대부 조요 라는것을 알았다.

여후는 조요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어사대부의 직을 파면하고 광아후 임오 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임오(任敖)는 전날 패의 옥리였다.

패공과는 매우 사이가 좋았다.

패공이 죄를 짓고 달아나자 패현의 관리가 패공 대신 패공의 아내 여씨를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옥리들이 여후를 거칠게 다루고 함부로 대하자 임오가 그 옥리에게 말했다.

"살살좀 다루게."

"뭐라고?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것이냐?"

"글쎄 좀 봐주고 잘 대해주라니까?"

그러나 그 옥리는 임오의 말을 듣지 않고 여후를 더욱 거칠게 다루었다.

그걸 본 임오는 크게 노하여 그 옥리를 두들겨 패고 달아나 숨어 버렸다.

 

패공이 기의하자 임오는 빈객으로 종군하여 어사 가 되어 풍땅을 지켰다.

고조가 한왕이 되어 항우를 공격하기 위해 동쪽으로 진격할 때 임오는 상당의 태수가 되었다.

후에 고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임오가 상당을 굳게 지켰음으로써

그 공으로 식읍 1천 8백호의 광아후에 봉해졌다.

그리고 여태후에 의해 어사대부가 되었다.

그후 3년뒤에 어사대부에서 면직되고 그 뒤를 이어 평양후 조줄이 어사대부가 되었다.

 

그러나 조줄은 여태후가 죽은후에 여록등을 죽이는데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신들에 의해 쫓겨났다.

그 뒤를 이어 회남왕의 재상 장창이 어사대부가 되었다.

장창은 주발등과 함께 대왕을 효문황제로 세웠다.

효문제 4년에 승상 관영이 죽고 장창이 뒤를이어 승상이 되었다.

 

이때가 한나라가 개국한지 20년쯤 되던 때인데 그제야 나라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장군과 재상.공경등의 대신들은 모두 군문 출신이었는데

서무담당의 문신이 재상이 된것은 장창이 처음이었다.

 

장창은 음율과 역법을 정리하고 바로잡았다.

진나라가 세수를 10월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도 율력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오행설에 따르면 한나라는 수덕에 해당한다고 했고 색깔은 옛날처럼 흑색을 숭상하기로 했다.

12율의 관악기를 불어서 음률을 조정하고 이것을 각각의 오음에 배당했다.

대소경중의 비례에 따라 법률을 제정했으며 각종 기물의 도량형의 표준을 마련하여

천하의 모든 공인들의 규범이 되게 하였다.

장창이 승상이 됨으로써 이것이 성취 되었다.

그리하여 한 제국의 음률과 역법을 논하는자는 장창을 기준으로 삼을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창은 독서를 좋아해서 읽지 않은 책이 없고 통달하지 않은 학문이 없었는데

그중에도 음률과 역법에 가장 밝았다.

 

장창은 왕릉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장창은 존귀한 자리에 오른 뒤에도 안국후 왕릉에 대하여 항상 아버지처럼 모셨다.

왕릉이 죽은 후에도 세목 때마다 반드시 선물과 음식을 장만하여 왕릉의 부인을 찾아가서

문안인사를 올렸다.

 

장창이 승상이 된지 10년뒤에 노나라 사람 공손신이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ㅡ한조는 수덕의 시기가 아니고 토덕의 시기 입니다.

토덕은 황색이며 그 징조로 황룡이 나타날것입니다.ㅡ

황제가 이 글을 보고는 장창에게 이것을 조당에서 심의해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장창은 스스로 수덕의 시기라고 주장하던터라 이것을 허황된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의논을 파기 하였다.

그런데 얼마후 성기에서 과연 황룡이 나타났다.

효문황제는 장창에게 그 일에대해 문책하고

공손신을 불러 토덕의 시기에 해당하는 역법과 제도를 기초하게 하였다.

그리고 개원하여 그해를 원년이라 했다.

장창은 그일로 인해 병을 칭하고 물러나서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또한 장창이 천거한 사람이 부정을 저질러서 그 죄에 연좌되어 다시 질책당하자

장창은 정말로 병이 났다.

그래서 장창은 승상이 된지 15년 만에 그자리에서 면직되었다.

장창은 승상의 자리에서 면직된후 이빨이 모두 빠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모유를 먹을수밖에 없었기때문에 집안에 백여명의 젊은여인을 유모로 두었다.

장창은 여인에 대한 기호가 매우 까다로워서 한번 임신한 여자와는 두번다시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장창은 백여세를 살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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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 신도가(申屠嘉)는 양나라 사람이다.

강노를 쏘는 용사로 패공을 따라 항우를 치다가 대장이 되었다.

경포의 군사를 격파하고 도위가 되었다.

 

장창이 승상이 된후 신도가는 승진을 거듭하여 어사대부가 되었다.

장창이 승상의 직에서 면직 되었을때 효문제는 두황후의 동생 두광국을 승상으로 삼고 싶어 했다.

두광국은 현명하고 덕행이 있었지만 황제는 사적인 정으로 친척을 등용했다는 평을 듣는것이 두려워

결국 두광국을 승상으로 임명하지 못하고 신도가를 승상의 자리에 앉혔다.

신도가는 청렴강직하여 사사로운 청탁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태중대부 등통은 남색의 상대로 황제에게 크나큰 총애를 받고 있었다.

등통의 집에는 황제에게 하사받은 재산이 거만금이 될정도였다.

그러하니 등통은 고관대작을 보고도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어느날 승상이 입조 했는데 황제의 옆에 서있던 등통이 승상에게 예를 행하지 않았다.

정사를 주청하는것을 모두 마친 신도가가 황제에게 등통에 대해 말했다.

"폐하께서 총애하는 신하를 부귀하게 하는것은 있을수 있으나

그 총애를 믿고 조정의 기강을 무너뜨리는것은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황제는 승상이 등통에대해 말하는것임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대가 한번만 용서하시오 다음부터는 절대 공식 석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겠소."

신도가는 황제께 절하고 물러나 승상부로 돌아와서 등통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일족을 모두 주살할것이다."

크게 놀란 등통이 그것을 황제에게 보였다.

"승상이 저를 죽이려 합니다."

황제가 말했다.

"너는 일단 승상부로 출두하라

그러면 짐이 사람을 보내어 너를 구출 하겠다."

등통은 승상부로 가서 관을 벗고 맨발로 기어들어가서 머리를 조아려 사죄했다.

그러나 신도가는 답례도 하지 않고 등통을 호되게 질책 했다.

"이 조정은 고황제의 조정이다.

네따위가 감히 신성한 전상에 올라 조정을 희롱 했으니 그것은 마땅히 참죄에 해당한다.

형리는 저자를 끌어내어 즉각 참수하라."

 

등통이 너무도 황망하여 머리를 땅바닥에 짓찧으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얼마나 격하게 머리를 찧었던지 바닥에 붉은피가 흥건히 고일 정도였다.

 

효문제는 승상이 등통을 충분히 혼내주었을즈음 해서야 사자에게 부절을 주어 보내 등통을 구했다.

"이는 내가 부덕하여 전상에서 신하와 희롱을 한 죄를 지은것이니

승상께서는 이제 그만 그를 용서해 주기 바라오."

 

승상부에서 간신히 살아 나온 등통은 황제 앞에서 통곡을 하며 아뢰었다.

"승상이 저를 거의 죽일뻔 했습니다."

그러나 효문제는 그 말을 못들은척 하였다.

 

효문제는 신도가가 승상이 된지 5년만에 붕어하고 뒤를 이어 효경제가 즉위 하였다.

경제 3년에 조착이 내사가 되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존귀한 신분이 되어 정무를 제 멋대로 전단했다.

조착이 주청하면 황제가 승인해 주었다.

조착은 제반 법령을 멋대로 바꾸고 제후들을 귀양 보내고 토지를 몰수했으며

형벌을 가하고 모욕을 주었다.

승상 신도가 조차도 조착의 위세때문에 큰소리를 치지 못할 정도였으나 속으로는

조착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조착의 집 대문이 동쪽으로 나 있어서 궁궐에 출입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조착은 집의 남쪽에 새로이 문을 내었다.

그런데 남쪽에는 죽은 효문제의 묘가 있어 그 담을 헐고 통로를 내었으니

이것은 참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신도가는 이 일을 기화로 하여 조착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말이 누설되어 조착이 먼저 알고 황제에게 가서 목숨을 구걸했다.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신도가는 아침에 조정에 들어가서 황제께 아뢰었다.

"조착이 선황제의 능묘를 침범하는 죄를 지었으니 그를 주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황제가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 담은 종묘가 아니고 바깥의 담이요.

내사가 궁에 출입하는것이 너무 불편한듯 하여 짐이 명하여 남쪽 벽을 헐게 하였소.

그러니 이는 나의 허물이며 조착에게는 잘못이 없소."

신도가는 통탄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법에의해 그의 목을 벤 후에 주청할것을

먼저 주청한 뒤에 목을 베려다가 말이 새어 조착의 계략에 당했구나."

신도가는 관사로 돌아온후 홧병이 생겨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시호를 절후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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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전의 말미에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장창은 학문과 음률 역법에 통달한 명 재상이었다.

그러나 가의.공손신등의 역법.복색에 관한 진언을 물리치고 경전에 명시된것을 따르지 않았으며

오로지 진나라가 사용하던 전욱력에만 의지하려 들었으니 그 이유를 알수가 없다.

주창은 소박 강직한 인물이다.

임오는 여후에대한 은공으로 중용되었다.

신도가는 강곡하고 절조를 지켰지만 학문이나 경륜을 펼만한 지식이 부족하여

소하.조참.진평등의 재상과는 그 등급을 비교할 인물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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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사마천의 사기열전 장승상열전에 등장한 인물들에 대하여 모두 알아보았다.

 

그런데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이 장승상열전에는 사마천이 저술한 부분 외에 다른 사람이 보충설명한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저소손(褚少孫)인데 서한시대의 문학가이며 사학가이다.

어렸을 때  패(沛)로 이주하여 살았다.

일찌기 당시의 저명한 유학자 왕식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원제와 성제 연간에 박사로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누락된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기에 더하여 가필 했다.

효무본기.삼왕세가.외척세가.귀책열전.일자열전및 골계열전을 보찬하거나 부록으로 달았다.

 

필자는 저소손이라는 후대의 역사가가 이 사기에 가필을 한 이유를 알수가 없다.

사마천이 효무제의 재위시절을 산 인물이고 사후에는 그 이후의 일을 알지 못했을것이니

그 이후의 이야기가 왜 사마천의 사기에 들어가야 하는것인가?

위대한 후학이 있어 그 뒤의 일을 말하고 싶으면 자기 이름으로 뒷날의 역사를 편찬하면 될것이지

무엇 때문에 남의 저술에다가 가필을 한다는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것은 필자가 지식이 없어 그러한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을테니

더이상 저소손의 행위에 대하여 비난을 퍼붓는것도 자신이 없다.

 

어찌되었거나 필자는 이 글에서 사마천의 사후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은 관계로

저소손의 가필 부분은 생략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굳이 남의 저술서 뒤에 가필을 한 그 행위에 대한 속뜻의 일부라도

알수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또 현명한 독자가 있어 저소손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가 글의 말미에 사마천의 '태사공자서'라 하여 비평한 내용만이라도 옮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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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 왈

 

가만히 생각해보면 선비가 초급관리로 시작하여 마침내 후에 봉해지는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사대부까지 오르는것도 매우 힘든 일이지만 거기서 관직을 마치는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사대부의 다음자리는 승상이란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속마음으로는 승상의 자리에 유고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도 그 속마음대로 되는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몰래 음모를 꾸며서 승상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어사대부의 자리에 있고도 승상이 되지 못하는사람도 많다.

그런가 하면 어사대부가 된지 며칠만에 졸지에 승상이 된 경우도 있다.

이런것을 운명이라고 하는것이다.

정홍은 수년간 어사대부로 있었지만 결국 승상이 되지 못했고

광형은 어사대부가 된지 한해도 못되어 승상에 올랐다.

 

그래서 직위란것은 지략과 간교함만 가지고서는 안되는것이다.

현성의 재주를 가지고도 안되는것은 끝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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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사마천의 사기열전 장승상 열전과 이 글에 가필했던 저소손의 태사공자서 까지 모두 살펴 보았다.

각 인물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본문에서 설명을 했으므로

오늘의 개별적인 인물평은 생략하려 한다.

 

마지막에 저소손이 말한 이야기중에

"현성의 재주를 가지고도 안되는것은 안된다는 이야기가 필자의 머릿속에 맴돈다.

어떤이가 대법관을 지낸후 변호사가 되어 하루에 천만원씩을 벌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렇게 번돈을 기부하고 총리가 되려한다는 말을 듣고 저소손의 이야기와 대비해보니

참으로 가소로움에 고소를 금할길이 없다.

돈을 벌고 싶으면 명예를 포기하고 명예를 취하려면 욕심을 버렸어야 할 사람들이

그 두가지를 모두 가지려는 끝없는 욕망으로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해 달려든다.

요 며칠사이에 선거에 출마한 어떤 아버지는 자기의 딸로부터

"선거에 출마해서는 안될 사람" 이라는 말까지 듣고도 결국 포기할줄 모르고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다.

 

저 어사대부 주창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군주에게 직언하였으며

가면 죽을줄 알면서도 조왕의 보좌로 조나라로 울면서 떠나갔다.

그와같은 절조는 바라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자식에게 욕먹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달려가는

저 불나방들을 보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ㅡ지략과 간교함만으로는 되지않는것이 벼슬이란다ㅡ

 

선거철이 되었다.

세상에 이로움을 주지 못하고 스스로의 이익만을 성취하기 위해 날아드는 불나방들을

모조리 제거하기위해 구충제를 뿌리러 우리 모두가 투표장으로 가야 할것이다.

 

우리가 해충들을 박멸하기 위해 구충제를 뿌릴수 있는 기회는 4년에 한번정도 밖에는 돌아오지 않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더러운 해충들을 박멸하기위해서 모두 투표하는 독자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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