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lazulando.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m5Eu1mRNd2g
기형도, 고독의 깊이
한차례 장마가 지났다
푹푹 파인 가슴을 내리쓸며 구름 자욱한 강을 걷는다
바람은 내 외로움만큼의 중량으로 폐부 깊숙한
끝을 부딪는다
상처가 푸르게 부었을 때 바라보는
강은 더욱 깊어지는 법
그 깊은 강을 따라 내 식사를 가만히 띄운다
그 아픔은 잠길 듯 잠길 듯 한 장 파도로 흘러가고
아아, 운무 가득한 가슴이여
내 고통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정유찬, 외로울 때가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떼의 새 무리가 지나간 후
혼자 나는 새가 있다
어떤 때는
한 마리의 새가 솟아오르고 난 뒤
한 무리의 새 떼들이
그 뒤를 따르는걸 볼 수 있다
혼자 나는 새는
가장 강한 새이거나
가장 약한 새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한 번쯤은
혼자 나는 새와 같이
외로울 때가 있다
창 밖을 바라보는 나
강한 건지
약한 건지 모르나
외롭다
지금
참
외로울 때다
김소월,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박복화, 나는 가끔
때때로 나는
비 내리는 쓸쓸한 오후
커피향 낮게 깔리는
바다 한 모퉁이 카페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듯
내 삶의 밖으로 걸어 나와
방관자처럼
나를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까닭 없이 밤이 길어지고
사방 둘러 싼 내 배경들이
느닷없이 낯설어서 마른기침을 할 때
나는 몇 번이고 거울을 닦았다
어디까지 걸어 왔을까
또 얼만큼 가야 저녁노을처럼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까
세월의 흔적처럼
길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낡은 수첩을 정리하듯
허방 같은 욕심은 버려야지
가끔 나는
분주한 시장골목을 빠져 나오듯
내 삶의 밖으로 걸어 나와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