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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종이꽃 접는 여자
게시물ID : lovestory_818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1
조회수 : 60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7 20:11:05

사진 출처 : https://www.pexels.com/search/vintage/

BGM 출처 : https://youtu.be/91EduicGj7o





1.jpg

이영식종이꽃 접는 여자

 

 

 

은유의 딱딱한 껍질도 모른다

사상의 모자 따위는 써본 적도 없다

여자는 진종일 종이꽃을 접고 있다

손 끝에서 피어나는 노동의 꽃송이 보며

밥 한 덩이 따뜻한 저녁을 생각한다

발목이 빠지도록 햇빛 넘치는 오후

지하셋방한 됫박의 어둠 속

꽃술에 입김 불어넣는 볼이 부풀고

하늘이 샛노랗게 내려앉는 순간

몇 개의 별이 눈가에 번뜩였던가

여자의 등줄기가 봉긋 솟는다

수북히 접어놓은 꽃무더기 속에서

여자는 한 마리 낙타가 된다

 

서른세 송이 종이꽃 목에 두른

낙타여자가 무릎을 세운다

항하사 모래 위 걷듯 걸어나간다

어둠에 길들여진 눈이 무시다

재빨리 낙타의 등을 핥아대는 불볕

비루먹은 갈색 털이 녹아 내린다

 

곱사등그녀의 둥근 알이 드러난다

쩍쩍 갈라진 마음안으로 마름질하고

비탈진 생의 보도블럭을 건너가는

한 잎의 여자꽃잎보다 가벼운

그녀의 손끝에서 사라진 지문이

색종이 이파리 물관을 트고

철사 위에 꽃을 피운다







2.jpeg

함민복긍정적인 밥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3.jpg

윤준경새의 습성

 

 

 

새를 동경한 것은 막연한 욕심이었을 뿐

날 수 있는 힘의 논리를

연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 그의 가벼움이 부러웠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부러웠을 뿐

나르는 연습조차 해 보지 않았고

나뭇가지 위에 납죽 앉아 보지도 않았다

인간 이상의 습성을 가지고 싶은 욕심에

나는 다만 새가 되고 싶었다

 

생각하면 새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부글부글 밥물이 넘치는 전기밥솥을 버리고

찍찍거리는 티브이를 버리고

언제 읽을지 기약도 없는 책들을 버리고

옷을 버리고 옷장을 버리고

지금 막 꽃피기 시작한 화분을 버리고

내장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아주 작아진 몸과 머리가 되어

오래 익힌 인간의 습성을 버리면

날개는 저절로 돋아날 것이다

 

나무가 새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가 나무를 받아들인다

방금 저 멧새가

아무도 찾지 않는

대추나무 가지를 흔드는 것을 보아라

대추나무는 비로소 집이 되는 것이다







4.jpeg

최영철시인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매미는

제 외로움을 온 천하에 외치고 다녔네

 

해밝으면 곧 날아갈 슬픔을

비는 너무 많은 눈물로 뿌리고 다녔네

 

아무데나 짖어대는 저 개

사랑이 궁하기로서니

그렇게 마구 꼬리를 흔들 일은 아니었네

 

그 바람에 새는

가지와 가지 사이를 너무 빨리 지나쳐 왔네

 

저녁이 오기도 전에 바위는

서둘러 제 몸을 닫아벼렸네

입만 꾹 다물고 있었으면 좋았을걸

 

붙잡던 손길 다 뿌리치고

물은 아래로 저 아래로 한정 없이 흘러가고 있네

 

천둥의 잘못은 너무 큰 소리고

제 가슴을 두드리며 울부짖은 것이네

 

시인의 잘못은 제 가난을 밑천으로

너무 많은 노래를 부른 것이네







5.jpeg

정다혜내비게이션에게 묻지 마라

 

 

 

최첨단 저 내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는 길이 있다

이를테면 너와 나 사이 흐르던

강길 같은 것

수만 볼트의 전류가 끊어지듯

사랑이 끝난 뒤의 깜깜한 밤길 같은 것

내 오랜 기다림의 주소를 입력하여도

내비게이션은 길이 없다고 한다

지름길은 더더욱 모른다고 한다

한때 눈 감고도 찾아가던 빛나던 이정표는

발자국이 지워지듯 사라지고

네 문고리에 뜨겁게 남은 내 지문은

이미 늙어 식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찾을 수 없는 길은 없다

그 주소 그 길 내 마음에

불도장처럼 뚜렷하게 남았으니

마음이 밝히는 길은 지워지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에게 그 길을 묻지 마라

당신 추억의 길 안내자는

오직 당신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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