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무서워” 라고, 그녀는 말했다. 노량진동 41-5번지, 고시원 5층 503호실. 그곳이 그녀의 방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정은. 공시생이였다. 그녀는 갓 24세가 된 공시생으로, 초봄에 새로 입주해 왔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이사, 생전 처음 해보는 독신 생활,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거리.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그녀는 새로운 생활에 당황해하면서도, 고시원에 조금씩 순응 하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혼자 있는 쪽이 편한 성격으로, 친구가 적은 것도, 주위가 조용해서 고독한점인 것도, 그다지 고통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 쪽이 고맙다. 방에 혼자 있기 일수인 그녀. 누구에게도, 친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새로운 생활이, 매우 마음에 든 것 같다. 그녀의 생활에 불만은 없었다. 단 두 가지. 현관까지의 길고 긴 복도와, 1개월 전 옆집으로 이사해온 고시생의, 어쩔 수 없는 얕은생각을 제외해야 하겠지만. 봄에 이사해 왔을 때부터 그 불만 아니, 불안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졸랐던 월 37 만의 1평남짓한 방이었다. 넓이는 약간 좁은편이였지만. 고독을 사랑한다고는 해도 그녀는 좁은방에서 검소한 생활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집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그녀에게 있어, 여기는 요새인 것이다. 요새는 넓고 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깊지 않으면 안심 할 수 없다. 그래. 그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타인이 옆에 있는 것.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침입해 오는 것을, 무의식중에 두려워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고시원을 고른 이유에 한 가지 더 덧붙여 둘 것이 있다. 현관부터 침실까지의 거리. 가장 처음부터 맨 끝,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 밖에 나가기 위해, 절대로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리다. 거실부터 현관까지는 4미터나 되는 직선으로 도중에는 창고도 욕실도 없다. 고시원으로서는 드물게 긴 복도지만 그 길이가 그녀의 마음에 들었겠지. 이상적인 넓이, 이상적인 진입로 입구를 멀리 뗴어놓는, 안이라고도 밖이라고도 할수없는 애매한 경계. 그 복도야 말로 “진정한 현관이다” 라고 호소하는 듯한 그것은 맘에드는길이의 복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생활을 시작해 보면 이 복도가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이렇게나 멋진 복도인데 뭐가 신경 쓰이는 걸까, 하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몇 개월이 지나서야 간신히 짐작을 했다. 단순한 이야기다. 그 긴 복도에는 전등이 붙어있지 않았다. 구조적인 결함으로, 전등을 다는 공간 자체가 없는 듯 하다. 다른 호실의 복도에는 붙어있지만, 이 5층 503호실을 잊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전등 다는 것을 잊어버릴 업자가 아니다. 몇 개월이나 살고 있으면서, 그런일을 이제와서야 깨닫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런 일을 깨닫지 못한 시점에서 그녀는 이미 어긋나 있었던 것이겠지.
여름이 되자 옆집에 고시생이 새로 왔다.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흔한 고시생. 젊은 나이로 23살이라는 그녀. 입주할 때에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정도의 사이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그 가족의 성씨가 xx라고 하는것과 그녀의 이름이 xx라고 하는 것 뿐이다. 고시원은 한 층에 두 세대 밖에 없는 L자형의 건물이다. L자의 중심이 복도이고 가로와 세로의 선이 각각의 세데를 이루고 있다. 복도에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그녀는 복도에서 xx와 만나는 일이 자주있지만, 때때로 인사만 하고 지나는 때가 있다.
“언니. 버튼 좀 눌러줄래?”
처음 만났을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그녀의 팔 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있다. 손을 뻗으면 누를수 없는 높이도 아닌데 어째선지, 그녀는 허리 위로는 손을 올리려 하지 않았다. 23살의 성인이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를 누르지 못한다, 라고 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정은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녀와는 5층의 복도뿐만 아니라, 1층의 엘리베이터 에서 만나는 일도 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의 앞에서 웅크리고 있어서 정은이 고시에 돌아오거나 혹은 외출하기 위해 방에서 나오면 얼굴을 들며 눈을 치켜뜨고 쳐다보았고,
“언니, 버튼눌러줘” 라는 부탁을 매번 하고는 했다.
몇 번인가 그런 주고받음을 하는 사이에 정은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정은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타인에게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언제나 빨간 모자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정은은 그녀를 ‘빨간모자’ 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은은 내향적인 여자다. 정은은 스스로의 생활을 귀찮게하지않는한 다른일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예를 들면 벽 너머로 들리는 옆 방의 말다툼 소리라거나, 이틀에 한 번꼴로 들려오는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라거나, 이미 비명이라고조차 할 수없는 그녀의 졀규라거나, 그녀의 팔이 허리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은 뼈가 부러진채로 방치된 후유증의 탓이라거나, 빨간 후드를 두르고 있는 것은 얼굴의 반점을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남친이 일러 두었기 때문이라거나 하는 뭐, 그런 남의 일 말이다. 현관에서 1미터 정도의 옆집의 소란인데, 라고 말하면서.
정은의 현관은 어쨌든 길다. 몇 미터 너머의 비명이기 때문에 TV화면을 바라보면서 흘려 들었다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밤은 한층 더 시끄러웠다. 유리창을 깨버릴 것 같은 절규. 사이렌 같은 울음소리. 복도에서 들리는 난폭하게 열리는 문의소리. 똑똑, 하고 그녀의 방에 울리는 무언가의 소리. 시각은 새벽 2시. 혼자 조용히 심야 방송을 즐기고 있던 그녀도 그 밤만은 성질에 거슬렸다. 사람이 상식이 있어야지, 하고 항의하려고 일어선다. 일어섰다가, 곧 앉았다. 뭐, 좀 있으면 조용해지겠지. 옆 방의 남친과의 다툼따위 어떻게 되어있는가 따위, 정은이 알바 아니다. 귀찮아서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여기서 주제넘는 참견을 해서 둘 사이의 관계에 끼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떤 일도 자기의 책임이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하고 그녀는 TV의 리모컨을 손에 쥐고 볼륨을 5정도 올렸다. 밤을 새우다가 TV를 끄고 잠이 들었을 무렵에는 평소의 조용한 밤이 되어 있었다.
다음날, 옆방의 고시생이 남친과 동반자살로 인해 죽은 사실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경찰에게 사정청취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어제의 사이, 그녀는 남친과의 말다툼 끝에 남친이 그녀를 흉기로 살해. 이후에 남친은 흉기로 자신을 찌른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어젯밤의 일을 묻는 경찰에게 정은은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모른다” 라고 대답했다. 경찰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 뒷모습에 그녀는 한가지 질문을했다. “저기, 그녀는 어떻게 됐나요?” 경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흉기에 혈액반응이 남아있으므로 찔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핏자국으로 보아 치명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하고 말하기가 곤란한 듯이 경찰은 중얼거렸다.
“시체가 없다더군요. 어디에도. 방에도, 도망쳐 나온 후의 복도에도”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녀는 남친의 흉기에 찔린후, 복도로 도망쳐 나온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 부터 그녀가 이동한 흔적은 없다. 핏자국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을까요. 아니, 애초에 어째서 옆집의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는 해도 벨을 누르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텐데.”
“언니, 버튼 눌러줘”
그녀에게는 어느 쪽의 버튼이든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경찰이 떠나고, 현관에 홀로 남겨진 정은은 상상한다. 새벽 2시. 흉기로 자신을 위협하는 남친으로부터 도망쳐 고시원 복도로 나왔지만 출구는 없어, 무너져버릴 듯한 우는 얼굴로 필사적으로 정은의 문을 계속 두드리는 그녀의 모습을. 결국. 그녀의 시체는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깊은 밤, 어떤 시간이 되면 정해진 듯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정은은 깨달았다. 소리 그 자체는 매우작다. 의식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은은 잠시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있는 거겠지 하고 납득하기로 했다. 소리는 매일 밤 들려온다. 똑똑. 사라져 버릴 것 같이 작은 주제에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 그것이 창문으로부터가 아닌 현관으로부터 나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정은은, 긴 복도를 걸어서, 현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누구세요, 하고 인터폰에 대고 불러본다. 대답은 없다. 그렇게나 작았던 소리는, 정은씨가 현관에 도착한 순간, 갑자기 조용해져서 들리지 않았다. 정은은 외시경을 통해 밖을 쳐다본다. 둥글게 일그러진 시야. 깨끗한 깔끔한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다만, 크림색의 현관에 붉은 얼룩이….
“쾅쾅쾅!!”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강하게 두드리는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정은은 경악해 외시경에 눈을 가까이 댄다.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다. 이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소리가 멈추지않는다. 외시경의 바로아래. 시야의 맨 밑에 무언가 붉은, 천을 뒤집어 쓴 무언가가, 문에 바짝 붙어서….
정은은 긴 복도를 도망치듯 돌아간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이후로 한밤중의 방문은 일과가 되었다. 정은은 결코 문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밤만 되면 무서웠다. 오늘밤도 소리는 들려온다. 기분 탓으로 돌리며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 하지만, 그것은 이미 뇌수에 깊이 침식해 떼어낼 수 없는 고통이며 신경을 깎아내는 칼날과 같은 것이었다. 날을 거듭할 수록 정은의 정신은 구석에 몰렸다. 여름의 끝. 이제 시간이 몇시든 간에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되어버린 정은은, 그날 밤, 결심했다. 문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라고. 긴 복도를 걸어간다. 현관의 몇 개 되지않는 불투명 유리를 통해 복도의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두드리는 소리는 흡사 문을 열어달라는 무언의 시위와도 같다. 긴 복도, 빛이라곤 없는 그 복도를 지나 그녀는 현관문을 열어 젖혔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아무도 없었다. 귀에 거슬리는, 두개골에 울려대는 노크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가 있을 리 없다. 처음부터 소리도 빨간 천도 없었던 것이다. “하하..” 웃음과 안도가 뒤섞인다. 얼어붙어 있던 몸이 급속도로 온도를 되찾아 간다. 단지 환청일 뿐이다. 아무래도 그 일이 있은 후 로, 자신은 그 사건을 필요이상으로 신경쓰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르는 사이에 죄의식이라도 느꼈는지, 제멋대로인 피해망상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것도 이제는 더 이상 없다. 이 문을 연 시점에서 모든 것은 끝났으니까. 후우. 이마의 땀을 닦고 현관문을 닫는다. 문을 잠그고 얼굴을 든다. 눈 앞에는, 마음에 드는 길고 긴 어두운 복도가. 동공이 확대된다. 복도의 한가운데에, 무엇인가 붉은 후드를 걸친, 본 기억이 있는 사체가, 그것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듯 했다. 이유도 없이 그녀는, 물어보면 죽는다, 라고 정은은 확신했다. 붉은후드의 사체. 어둠에 잠겨있던 그 입술이 열린다. 나이프로 도려내어진 수박같다. 빨간 모자는 피투성이의 소리로,
“언니, 버튼...”
그리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