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
산골 지리산高 켄트 카마숨바의 '코리안 드림'
가난한 수재들의 배움터 전교 53명 기숙사 생활
현지 한인들 추천으로 외국인 학생도 3명 입학
"대학 마친뒤 고국 돌아가 잠비아 경제 살리고 싶어"
"켄트야, 니 서울대 합격했데이!"
산골학교가 들썩거렸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고등학교. 서울대 외국인특별전형 합격자 발표를 확인한 박해성(54) 교장이 잠비아 출신 유학생 켄트 카마숨바(Kamasumba·20)군을 덥석 끌어안았다.
지리산고는 2004년 문을 연 전교생 53명의 미니 학교다. 카마숨바군은 이 학교 개교 이래 첫 서울대 합격자다. 박 교장 품에 안긴 카마숨바군은 한국말로 "선생님, 캄사합니다. 정말 캄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서울에 올라가도 절대 지리산고를 못잊을 겁니다. 아임 베리 러키(I'm very lucky·전 진짜 행운아예요)."
카마숨바군은 이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최종 합격통지를 받았다. 아프리카 중남부 잠비아를 떠나 꼬박 하루 걸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온 지 7개월 만이었다.
지리산고는 지난해부터 "가난한 나라 수재들을 데려다 공부시키자"는 취지로 20여 개 저개발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교사와 현지 교민회, 명예영사 등을 통해 '진흙 속의 진주'를 추천받고 있다. 본인만 잘하면 대학은 물론 박사과정까지 학비와 체재비를 대주되, 공부를 마치면 본국에 돌아가 자기 나라뿐 아니라 더 어려운 나라를 돕는다는 조건이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 아몽 마르티넨 음발라무(19)군과 키르기스스탄 출신 아블카슴 우르 누르술탄(17)군이 지난해 입학해 올해 2학년이 됐고, 지난 3월 카마숨바군이 3학년에 편입했다. 카마숨바군의 고향은 잠비아의 시골 뭄부아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재혼한 어머니는 아들을 돌볼 형편이 못됐다. 카마숨바군은 "하루 한 끼 먹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물 길으러 갔어요. 왕복 4시간 걸려요. 학교 가면서 숲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었어요. 학교 끝나면 배가 고파서 물 마시고 나무열매를 또 따먹었어요."
카마숨바군은 올 2월 수도 루사카 근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인 큰아버지 집에서 기거하며 학교를 다녔다. 카마숨바군은 "대학 가고 싶었지만, 큰댁도 힘들게 살아서 도저히 '공부 더 하고싶다'는 말이 안 나왔다"고 했다. 카마숨바군을 눈여겨본 한국인 선교사가 그를 지리산고에 추천했다.
지리산고는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공부할 의지가 있는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특성화 고교다. 박 교장이 평생 교직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제자들을 도왔던 부친 박상화(82)씨의 뜻을 이어받아, 부친이 한때 교사로 근무했던 2층짜리 폐교(백곡초등학교)를 사들여 지리산고를 열었다.
박 교장은 "공부할 뜻이 있는지, 집안이 정말 어려운지 딱 두 가지를 보고 학생을 뽑는다"며 "그동안 졸업생 40명을 배출했고, 전원 대학에 붙었다"고 했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전국 각지에서 온 똘망똘망한 학생들이다. 경남교육청에서 교사 11명 월급과 학교 운영비를 댄다. 전교생 숙식비와 교재비, 병원비 등으로 한 달에 1000만원쯤 든다. 정기후원자 500여 명이 보내주는 돈 700만원에 부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후원금을 합쳐서 학교 살림을 꾸린다. 아이들이 받는 데만 익숙해지지 않도록 나누는 것도 강조한다. 매주 금요일 오후 전교생이 교실 대신 인근 독거노인들 집에 가서 말벗도 돼주고, 농사일도 거든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산림보호 활동도 한다.
낯선 땅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카마숨바군은 하루 세끼 밥·국·김치를 먹으며 공부에 몰두했다. 낮에는 외국인 학생 3명이 모여 영어로 정규 교과목 수업을 들었고, 수업이 끝나면 새벽까지 학교 독서실에서 우리말 공부를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방과후 봉사활동을 하면서 한국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카마숨바군과 한 방을 함께 쓰는 도규민(18)군은 "켄트는 매일밤 독서실에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새벽 3시쯤 빼꼼히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했다.
카마숨바군의 담임교사인 조순영(29)씨는 "고향에서 가난 때문에 마음껏 배우지 못한 상처가 컸는지 공부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며 "낯선 나라에 적응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회과 변경환(35) 교사는 "켄트는 붙임성이 좋고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공부하다 막히면 귀찮을 정도로 곁에 와서 '선생님, 선생님'하고 끈질기게 질문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 카마숨바군은 잠비아의 큰아버지에게 국제전화로 합격사실을 알렸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큰아버지가 저 혼자 한국 보내고 매일 기도 했대요. 정말 캄사하고 좋아하세요" 했다. "사람은 공부 진짜 열심히 해야 돼요. 대학 가면 정말 공부 열심히 할 거예요. 잠비아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저 많이 부러워할 거예요."
카마숨바군의 책상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영문판 자서전 '내겐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가 꽂혀 있었다. 그는 "대학을 마치면 잠비아로 돌아가서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며 "나중에는 잠비아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두려운 건 '추위'다. 올겨울 지리산에 내릴 첫눈이 카마숨바군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이 된다.
산청=박순찬 기자
[email protected] ps.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매일 게임만 하는 자신을 반성합니다. 우리 같이 열심히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