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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결코 아름답다 얘기하지 말자
게시물ID : lovestory_818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0
조회수 : 54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4/13 20:16:46

사진 출처 : https://milkwithhonev.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VqIrY99kKjw





1.png

김병호오래된 미행

 

 

 

어둠에 부딪친 새떼들과 함께

허공에 무덤을 걸쳐놓고 살았다

 

한낮의 문장들이 다듬은 둥그런 저녁

물렁한 무덤 속에선

말갛게 여문 비밀들이 향기로웠다

자작나무 숲 응달의 녹슨 음들이

불길처럼 부풀었다

 

내력을 지운 밤들이 타박타박 번지고

묘석에 새긴 변명들은 흉터로 빛났다

한 사람의 생보다 짧았던 왕국과

어제 패한 나의 사랑

 

황혼녘의 별들은 열두 이랑의 눈동자로 수런거렸고

내가 입만 열면

꽃과 뱀이 쏟아졌다

 

탯줄 같은 첫 새벽의 어둠을 지닌 나는

능선 너머의 파도처럼 시퍼렇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벼랑처럼 새벽이 생겼다







2.jpg

김영언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

 

 

 

여린 풀들 몇 가닥

비쩍 마른 종아리를 치켜들고

무너진 장독대를 기웃거린다

소문 없이 굵어진 감나무 가지 끝에서

행여 소식이라도 떨어져 내리지

않을까않겠지않아도

우리는 안다다만

아무 가져갈 것 없이 가볍게 떠난 자리

옹기종기 그림자들 묻힌 자리에선

여윈 버섯들 자잘한 그리움으로 피고 지고

밑 빠진 대항을 넘성거리는

여린 풀들 몇 가닥 같은 발자국들아

도회지 팍팍한 삶처럼 뒤꿈치 굳은 살 갈라진

늙은 감나무 밑둥 같은 얼굴들아

두런두런 쌓이는 이슬이 가녀린 바람마저 잠재우면

길은 산발한 잡풀 속에 잠들어

행여 거친 꿈에 시달리는지 자꾸만

깊은 도랑 속에 뒤척뒤척 몸을 빠뜨리고

소문 없이 잔가지 무성해진 감나무는

그 새벽 풀숲으로 여전히

풋감들 수북수북 떨군다이제

아무도 그 세월을 주워 가지 않건만







3.jpg

송경동세상이라는 큰 책

 

 

 

가리봉오거리에 하나 있던

공단서점이 문 닫고 난 후

책 읽을 일이 적어졌다

 

양식이 되는 책은 팔지 못하고

병 될 책만 팔아서였나 보다

그래도 양심은 있지

날일 다니던 주인도

골병들어 떠났으니 말이야

 

언제라도 한 번 그 뒷방에 모여

책 던지고 공단에 들어가

옳게 병든 사람들과

옳게 병들어 나와

갈 곳 없이 책만 보던 사람들 어울려

내외 없이술 한 잔 기울여 보았으면

 

거리의 모두가 책이던 시절

아직 쓰여지지 않은

새로운 책 페이지들이 되어 거리에서 찢기거나

닭장차 속 구겨 넣어지거나 빗물에 젖거나

때론 분서갱유 되어 갔던

그 갸륵한 신간들







4.png

장석남마당에 배를 매다

 

 

 

마당에

녹음 가득한

배를 매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끝에

몇 포기 저녁 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이 세상에 온 모든 생들

측은히 내려보는 그 노래를

마당가의 풀들과 나와는 지금

가슴속에 쌓고 있는가

 

밧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

혹은

갈증

 

배를 풀어

쏟아지는 푸른 눈발 속을 떠갈 날이

곧 오리라

 

사랑해야 하리

이 세상의 모든 뒷모습들

뒷모습들







5.png

양문규꽃들에 대하여




올해 처음으로 피어난 꽃들에 대하여

아름답다 말하지 말자

 

봄날로부터 가을에 해거름까지

우리들이 발을 붙이고 있는

이 땅의 어디에서나 피어있을

그 꽃들을 함부로 얘기하지 말자

 

그리움과 사랑 같은

혹은 순수나 빛깔 따위

마음을 치장하는 너울이 아님을

가지마다 흐트러지는 잎의 하나하나에

말 못할 아픔 베올로 짜여 있음을

우리 얘기하지 말자

 

묏등 가에 서 있는 들꽃 한 송이

멀리서 그저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아니이 땅의 주름진 하늘 끝에 닿아

되돌려지는 메아리로

누구나 꽃밭에서 생각하던

통곡하다 떠나간 거리의 한 모퉁이

들꽃에 대하여도

우리 말하지 말자

 

결코 아름답다 얘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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